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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찾아서] 3편

영국에서 일본, 한국, 중국으로 — 조선 주도권의 이동

AI Written

2026.11.05 · 12분 · 조선·해운 / 세계·지정학

  1. 영국, 바다를 지배하던 조선소
  2. 일본의 등장 — 블록과 대형화
  3. 한국, 모래사장에서 시작하다
  4. 일본을 넘어서다
  5. 중국의 물량 공세
  6. 한국 조선의 겨울
  7. 그리고 지금 — 다시 온 호황

세계에서 배를 가장 많이 만드는 나라는 100여 년 동안 세 번 바뀌었다. 영국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한국으로, 그리고 한국에서 중국으로. 매번 무엇이 주도권을 옮겼을까? 기술이 좋아서였을까, 싸서였을까, 아니면 정부가 밀어줘서였을까? 조선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반도체에서 봤던 장면이 묘하게 겹친다.

3-1. 영국, 바다를 지배하던 조선소

19세기~20세기 초, 영국

산업혁명으로 철과 증기기관을 먼저 가진 나라가 철선과 증기선도 먼저 만들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영국은 세계 선박의 절반 이상을 지었다(대략치) [확인 필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클라이드 강변, 잉글랜드 북동부 타인 강변에는 조선소가 줄지어 있었다. 1912년 첫 항해에서 가라앉은 타이타닉호도 영국령이던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의 할랜드 앤 울프 조선소가 지은 배다.

진수를 앞둔 타이타닉호(1911년 5월, 벨파스트 할랜드 앤 울프 조선소)
진수를 앞둔 타이타닉호(1911년 5월, 벨파스트 할랜드 앤 울프 조선소). 배를 감싼 거대한 철골이 당시의 건조대다.

영국 조선의 힘은 세계 최대의 해운·무역 제국이라는 든든한 고객에서 나왔다. 영국 해운사가 영국 조선소에 배를 주문하고, 영국 해군이 군함을 주문했다. 수요와 공급이 한 나라 안에서 맞물려 돌아간 것이다.

그런데 이 강점이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 주문이 넘치던 시절의 방식, 즉 숙련공이 배마다 손으로 맞춰 짓는 방식을 영국은 오래 버리지 못했다. 직종별로 나뉜 노조가 많아 작업 방식을 바꾸기 어려웠고, 조선소들은 낡은 설비에 새로 투자하지 않았다. 그 사이 바다 건너에서 전혀 다른 방식이 자라고 있었다.

3-2. 일본의 등장 — 블록과 대형화

1956년, 일본이 1위로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은 수송선이 급하게 필요해서 '리버티선'이라는 표준 화물선을 수천 척 찍어 냈다. 리벳 대신 용접을 쓰고, 배를 덩어리로 나눠 따로 만든 뒤 붙였다. 1편에서 본 블록 공법의 원형이다. 전쟁이 끝난 뒤 일본 조선소들이 이 방식을 받아들여 다듬었고, 여기에 일본 특유의 공정 관리와 품질 관리를 더했다.

때마침 1950~60년대 중동 석유가 쏟아져 나오면서 큰 유조선 수요가 폭발했다. 1956년 수에즈 운하가 막히자(수에즈 위기) 아프리카를 돌아가야 했던 선주들은 '한 번에 더 많이 싣는 더 큰 배'를 원했다. 일본은 큰 도크를 새로 짓고 대형 유조선을 빠르게, 싸게 지었다. 1956년 일본은 진수량(물에 띄운 배의 양)에서 영국을 제치고 세계 1위가 됐다.

일본의 무기는 세 가지였다. 블록 공법으로 빨라진 건조 속도, 미쓰비시중공업·IHI·가와사키중공업 같은 대기업의 투자, 그리고 정부의 수출선 금융 지원이다. 영국이 '장인의 배'를 지을 때 일본은 '공장의 배'를 지은 셈이다.

3-3. 한국, 모래사장에서 시작하다

1971~1974년, 울산 미포만

한국의 출발은 거의 맨손이었다. 1970년대 초 박정희 정부는 철강·조선·화학 같은 중화학공업을 키우기로 하고,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 회장에게 조선소를 맡겼다. 정주영은 건설회사 출신으로, 배를 지어 본 적이 없었다.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1998년, 판문점)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1998년, 판문점). 건설회사 출신으로 1970년대 초 울산에 조선소를 세웠다.

조선소를 지을 돈부터 문제였다. 정주영이 영국 은행에서 차관을 얻으려고 할 때, 500원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보여 주며 "한국은 400년 전에 이미 철갑선을 만든 나라"라고 설득했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정주영 본인이 회고한 일화로, 세부 내용은 전하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그리고 아직 조선소도 없는 상태에서 그리스 선주에게 울산 미포만 모래사장 사진과 지도만 들고 가 대형 유조선 2척을 주문받았다.

1972년 조선소 공사를 시작했고, 조선소를 짓는 동시에 배를 지었다. 1974년 첫 배인 26만 톤급 유조선 '애틀랜틱 배런'호를 인도했다. 이 조선소가 지금의 HD현대중공업이다. 비슷한 시기 대우(옥포, 지금의 한화오션)와 삼성(거제, 삼성중공업)도 조선소를 세우면서 지금의 '빅3'가 자리를 잡았다 [확인 필요: 각 조선소 착공·인수 연도].

왜 하필 조선이었을까? 조선은 사람 손이 많이 가는 산업이라 인건비가 싼 나라가 유리했고, 동시에 철강(포스코, 1973년 첫 쇳물)을 대량으로 써 주는 고객이 돼 줄 수 있었다. 정부 입장에서는 일자리, 수출, 철강 수요를 한 번에 해결하는 산업이었다. 연결: 배터리·소재(철강), 정치·사회.

3-4. 일본을 넘어서다

1970년대 두 번의 석유 파동으로 유조선 주문이 뚝 끊기자 세계 조선업은 긴 불황에 빠졌다. 이때 일본과 한국의 선택이 갈렸다. 일본 정부와 조선소들은 남는 설비를 줄이는 쪽을 택했다. 도크를 없애고 인력을 줄여 살아남으려 한 것이다. 반면 한국 조선소들은 불황에도 설비를 늘리고 큰 도크를 지었다.

반도체 2편에서 본 장면과 닮았다. DRAM에서 한국이 일본을 이긴 방식, 즉 '불황에도 투자를 멈추지 않은 쪽이 호황을 쓸어 간다'는 공식이 조선에서도 먼저 나타났다. 1990년대 후반 경기가 돌아오자 주문은 설비를 갖춰 놓은 한국으로 몰렸다. 한국은 2000년 전후 수주량에서 일본을 넘어 세계 1위가 됐다 [확인 필요: 정확한 연도].

한국은 양만 늘린 게 아니었다. 1990년대에 LNG선을 처음 짓기 시작했고, 2000년대에는 대형 컨테이너선과 해양플랜트로 넓혔다. 일본이 설비를 줄이며 젊은 기술자를 뽑지 않는 사이, 한국은 같은 시기에 비싼 배를 짓는 경험을 쌓았다. 지금 한국이 LNG선을 잘 짓는 배경이 이때 만들어졌다.

3-5. 중국의 물량 공세

2000년대, 중국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자 중국으로 원자재가 들어가고 공산품이 나가는 물동량이 폭발했다. 배가 모자라자 선박 주문이 쏟아졌고, 중국 정부는 조선업을 국가 전략 산업으로 정해 조선소를 대거 늘렸다. 국영 조선소와 함께 수많은 민간 조선소가 생겼다.

중국은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던 공식을 그대로 썼다. 싼 인건비, 정부의 금융 지원, 그리고 거대한 내수 고객(중국 국영 해운사, 국영 에너지 회사)이다. 처음에는 단순한 벌크선부터 시작해서 컨테이너선, 유조선으로 범위를 넓혔다. 2010년 전후 중국은 수주량에서 한국을 넘어 세계 1위가 됐다 [확인 필요: 기준별 연도].

상하이 창싱섬의 장난 조선소(2023, 밤 항공사진)
상하이 창싱섬의 장난 조선소(2023, 밤 항공사진). 중국 최대 조선소 중 하나로 국영 중국선박집단(CSSC) 소속이다.

2008년 금융위기 뒤 주문이 끊기자 중국 정부는 경쟁력이 약한 민간 조선소를 대거 정리하고, 남은 큰 회사를 묶었다. 2019년에는 두 국영 조선그룹이 합쳐져 세계 최대 조선그룹인 중국선박집단(CSSC)이 생겼다. 지금 중국은 세계 선박 주문의 절반 이상을 가져간다. 연결: 세계·지정학.

조선 주도권의 이동 · 영국(~1950년대) → 일본(1956~) → 한국(2000년 전후~) → 중국(2010년 전후~)
조선 주도권의 이동. 1위가 바뀐 연도는 기준(수주·건조·진수)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대략치).

3-6. 한국 조선의 겨울

중국에 1위를 내준 뒤 한국 조선은 긴 겨울을 보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배 주문이 줄었는데, 호황 때 늘려 놓은 설비는 그대로였다. 빈 도크를 채우려고 한국 조선소들은 앞 편에서 본 해양플랜트를 낮은 값에 대거 수주했고, 2014년 이후 유가가 폭락하면서 대규모 손실을 봤다.

그 결과는 혹독했다. 2016년 STX조선해양이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중소 조선소 여러 곳이 문을 닫았다. 대우조선해양은 정부와 산업은행의 공적자금으로 버텼다. 같은 시기 해운 쪽에서는 한국 1위 해운사였던 한진해운이 2017년 파산했다. 배를 만드는 쪽과 배를 쓰는 쪽이 함께 무너진 시기였다.

정부는 대우조선해양을 현대중공업에 넘겨 빅3를 빅2로 줄이려 했다(2019년). 하지만 두 회사가 합쳐지면 LNG선 시장을 독점하게 된다는 이유로 유럽연합(EU)이 2022년 합병을 막았다. 결국 대우조선해양은 2023년 한화그룹에 인수돼 한화오션이 됐다. 이 과정에서 많은 숙련공이 조선소를 떠났고, 이것이 지금의 인력난으로 이어진다.

3-7. 그리고 지금 — 다시 온 호황

2021년부터 바람이 바뀌었다. 코로나19 이후 해운 운임이 폭등해 해운사들이 큰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배를 주문했다. 여기에 국제해사기구(IMO)가 배의 탄소 배출을 단계적으로 줄이라는 규제를 내놓으면서, 오래된 배를 친환경 배로 바꿔야 하는 교체 수요가 생겼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이 러시아 가스 대신 LNG를 사들이면서 LNG선 주문도 늘었다.

한국은 이 호황에서 '많이'보다 '비싸게'를 택했다. 줄어든 인력과 도크로 모든 주문을 받을 수 없으니, LNG선과 친환경 선박 위주로 골라 받았다. 그래서 수주량 1위는 여전히 중국이지만, 한국 조선소들의 이익은 2023~2024년부터 크게 좋아졌다.

여기에 새 변수가 생겼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다. 미국은 자국 조선업이 거의 사라진 상태에서 중국 조선소가 세계 선박의 절반 이상을 짓는 것을 안보 문제로 보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지은 배에 항만 수수료를 물리겠다고 나섰고, 동맹국 조선소, 특히 한국과 손잡고 군함 수리와 조선소 재건을 하려 한다. 주도권 경쟁이 이제는 원가만이 아니라 '어느 편에 서 있느냐'로도 갈리기 시작한 것이다. 연결: 방산·우주, 세계·지정학.

핵심 정리

조선 1위는 영국 → 일본 → 한국 → 중국으로 옮겨 왔다. 매번 이긴 쪽은 새로운 공법이나 더 싼 원가에, 불황에도 멈추지 않은 설비 투자와 정부 지원을 더한 나라였다. 한국은 물량에서는 중국에 밀렸지만 비싸고 어려운 배로 자리를 지키고 있고, 미중 갈등이라는 새로운 바람을 맞고 있다.

그럼 지금 한국 조선은 구체적으로 누가 이끌고 있을까? 빅3는 서로 어떻게 다르고, 배 한 척에 들어가는 엔진과 부품은 누가 만들까? 다음 편에서는 한국 조선의 회사 지도를 그려 본다.

다음 편 예고 — 한국 조선 빅3와 기자재: 누가 무엇을 만드나

HD현대, 삼성중공업, 한화오션의 출신과 강점, 그리고 엔진·보냉재·후판처럼 배 안에 들어가는 것들을 만드는 회사들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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