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찾아서] 2편
돈 되는 배 — LNG선·컨테이너선·유조선
AI Written
- 배를 나누는 기준 — 무엇을 싣나
- 벌크선 — 가장 단순하고, 가장 많은 배
- 유조선 — 원유 200만 배럴을 싣는 VLCC
- 컨테이너선 — 바다 위의 물류센터
- LNG선 — 영하 162도를 싣는 배
- 그 밖의 배 — 자동차운반선, 해양플랜트, 군함
- 비싼 배는 한국, 많은 배는 중국 — 왜일까
같은 '배'라도 다 같은 배가 아니다. 철광석을 실어 나르는 단순한 배가 있는가 하면, 영하 162도의 가스를 싣고 대양을 건너는 배도 있다. 무엇을 싣느냐에 따라 배의 구조, 값, 만들기 어려운 정도가 완전히 달라지고, 그 차이가 어느 나라 조선소가 그 배를 주로 만드는지까지 정한다. 이번에는 배를 종류별로 나눠 보고, 왜 비싼 배는 한국이, 많은 배는 중국이 만드는지 따라가 보자.
2-1. 배를 나누는 기준 — 무엇을 싣나
상선(물건을 실어 나르는 배)은 크게 실어 나르는 화물로 나눈다. 철광석·석탄·곡물처럼 포장 없이 쏟아 붓는 화물을 나르는 벌크선, 원유나 석유제품을 나르는 탱커(유조선), 상자에 담긴 공산품을 나르는 컨테이너선, 액화가스를 나르는 가스선(LNG선·LPG선)이 4대 선종이다. 여기에 자동차를 나르는 자동차운반선, 바다 위 공장인 해양플랜트, 군함이 따로 있다.
선종마다 난도가 다르다 보니, 조선업계는 배의 양을 셀 때 단순한 무게 대신 CGT(Compensated Gross Tonnage, 표준선 환산톤수)라는 단위를 쓴다. 배의 크기(총톤수)에 '만들기 어려운 정도'를 곱한 값이다. 크기가 같아도 LNG선은 벌크선보다 CGT가 훨씬 크게 잡힌다. 뉴스에서 "한국이 올해 수주 점유율 몇 %"라고 할 때 보통 이 CGT 기준이다.
그럼 가장 단순한 배부터 하나씩 올라가 보자.
2-2. 벌크선 — 가장 단순하고, 가장 많은 배
벌크선은 거대한 철 상자에 가깝다. 갑판에 큰 뚜껑(해치)이 있고, 그 아래 빈 화물칸에 철광석이나 석탄, 곡물을 그대로 쏟아 붓는다. 브라질과 호주의 철광석이 중국 제철소로, 미국의 곡물이 아시아로 가는 길이 이 배들의 주 무대다. 가장 큰 급인 '케이프사이즈'는 수에즈·파나마 운하를 지나기엔 너무 커서 아프리카 남쪽 희망봉을 돌아간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구조가 단순하니 만들기 쉽고, 값도 싸다. 큰 케이프사이즈도 대략 7천만 달러 안팎이다(대략치) [확인 필요]. 그래서 벌크선은 인건비와 강재값이 싼 조선소가 유리하고, 지금은 대부분 중국과 일본 조선소가 만든다. 한국 대형 조선소는 2000년대 이후 벌크선을 거의 받지 않는다. 같은 도크 자리에 더 비싼 배를 넣는 편이 남기 때문이다.
벌크선 운임은 'BDI(발틱 운임지수)'라는 지수로 매일 발표된다. 철광석·석탄 수요가 곧 벌크선 수요라서, BDI는 중국 경기를 보는 지표로도 쓰인다. 연결: 경제·시장, 배터리·소재(철강).
2-3. 유조선 — 원유 200만 배럴을 싣는 VLCC
유조선은 벌크선보다 한 단계 복잡하다. 액체를 싣기 때문에 화물칸을 여러 칸으로 나누고, 펌프와 배관으로 기름을 넣고 빼야 한다. 기름이 새면 바다가 오염되니 1990년대부터는 배 바닥과 옆을 두 겹으로 만드는 '이중 선체'가 의무가 됐다. 1989년 미국 알래스카에서 유조선 엑손 발데스호가 좌초해 큰 기름 유출 사고가 난 것이 계기였다.

가장 큰 유조선은 VLCC(Very Large Crude Carrier, 초대형 원유운반선)다. 원유를 약 200만 배럴 싣는데, 한국이 하루에 들여오는 원유가 대략 이 정도다(대략치). 중동에서 한국·중국·인도로 원유를 나르는 길이 VLCC의 주 무대다. 한 척 값은 대략 1억 2천만~1억 3천만 달러 수준이다(대략치) [확인 필요].
유조선은 한국 조선소가 오랫동안 잘 만들어 온 배다. 한국 조선의 첫 배도 VLCC였다. 최근에는 바다에 떠 있는 유조선이 많이 늙었는데도 새 배 주문이 적었다. 앞으로 석유 수요가 줄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다. 대신 러시아처럼 제재를 받는 나라의 원유를 나르는 낡은 유조선들, 이른바 '그림자 선단'이 늘어났다. 연결: 세계·지정학, 전력·에너지(석유).
2-4. 컨테이너선 — 바다 위의 물류센터
우리가 쓰는 공산품, 옷, 가전, 부품은 대부분 컨테이너에 담겨 바다를 건넌다. 컨테이너는 크기가 국제 표준으로 정해진 철 상자라서, 배에서 내려 바로 트럭이나 기차에 올릴 수 있다. 1950년대 미국 사업가 맬컴 매클레인이 이 방식을 퍼뜨리면서 물건을 싣고 내리는 비용과 시간이 크게 줄었고, 지금의 세계 무역이 가능해졌다.
컨테이너선은 속도가 중요하다. 정해진 항로를 정해진 날짜에 오가는 버스 같은 배라서, 벌크선이나 유조선보다 빠르게 달리도록 몸이 날씬하다. 그리고 갈수록 커졌다. 한 번에 많이 실을수록 컨테이너 한 개당 비용이 싸지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 8천 TEU급이 '초대형'이었는데, 지금은 2만 4천 TEU급까지 왔다.
코로나19 이후 운임이 폭등해 해운사들이 큰돈을 벌자, 2021년부터 컨테이너선 주문이 쏟아졌다. 큰 컨테이너선은 한국과 중국이 나눠 만들고, 최근에는 중국 조선소의 몫이 커졌다. 친환경 연료(LNG, 메탄올)로 움직이는 큰 컨테이너선은 한국이 강한 편이다 [확인 필요: 연도별 점유율]. 컨테이너 운임은 뒤에서 해운사 입장에서 따로 본다.
2-5. LNG선 — 영하 162도를 싣는 배
이제 가장 어렵고 비싼 배다. LNG(Liquefied Natural Gas, 액화천연가스)는 천연가스를 영하 162도까지 차갑게 식혀 액체로 만든 것이다. 액체가 되면 부피가 약 600분의 1로 줄어 배로 나를 수 있게 된다. 문제는 이 온도를 바다 위에서 몇 주 동안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LNG선의 핵심은 화물창, 즉 가스를 담는 탱크다. 영하 162도에서는 보통 철이 유리처럼 깨진다. 그래서 화물창 안쪽을 수축이 거의 없는 특수 금속(스테인리스나 니켈 합금)의 얇은 막으로 덮고, 그 바깥을 두꺼운 단열재로 감싼다. 이 '멤브레인' 방식 화물창의 원천 기술은 프랑스 회사 GTT가 쥐고 있다. GTT는 배를 만들지 않지만, LNG선 한 척을 지을 때마다 배값의 몇 %를 기술료(로열티)로 받는다(대략 5% 안팎) [확인 필요]. 한국 조선소가 LNG선을 아무리 많이 지어도 일정 몫이 프랑스로 가는 구조다. 단열재는 한국카본, 동성화인텍 같은 한국 기자재 회사가 많이 공급한다.

엔진도 까다롭다. 화물창에서 조금씩 기화하는 가스를 버리지 않고 연료로 쓰는 엔진, 다시 액체로 되돌리는 장치가 들어간다. 이 모든 걸 정확하게 맞물리게 짓는 경험이 쌓인 조선소가 한국 빅3였다. 그래서 한 척에 2억 5천만 달러 안팎인 대형 LNG선 주문은 오랫동안 한국이 대부분을 가져갔다(대략치) [확인 필요: 연도별 점유율].
대표적인 장면이 카타르다. 세계 최대 LNG 수출국 중 하나인 카타르는 가스전 확장에 맞춰 2020년 한국 조선 3사와 LNG선 100척 이상 규모의 건조 슬롯(도크 자리) 예약 계약을 맺었다. 배를 사겠다고 하기도 전에 도크 자리부터 잡아 둔 것이다. 다만 중국 조선소(후둥중화 등)도 LNG선을 꾸준히 따라오고 있어서, 한국의 독주가 얼마나 갈지는 지켜볼 대목이다. 연결: 전력·에너지(LNG).
2-6. 그 밖의 배 — 자동차운반선, 해양플랜트, 군함
자동차운반선은 거대한 주차빌딩을 배로 만든 것이다. 차를 직접 운전해 배에 싣는다. 중국 전기차 수출이 급증하면서 BYD 같은 자동차 회사가 자기 배를 주문할 정도로 수요가 늘었고, 이 배는 대부분 중국 조선소가 짓는다. 연결: 모빌리티.
해양플랜트는 바다 위에서 원유나 가스를 뽑고 처리하는 시설이다. 2010년대 초 유가가 높을 때 한국 빅3가 앞다퉈 수주했지만, 처음 해 보는 설계가 많아 공사가 밀리고 비용이 불어났다. 2014년 이후 유가까지 폭락하면서 빅3는 수조 원대 손실을 봤다 [확인 필요: 정확한 손실 규모]. 이때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은 정부와 국책은행의 지원으로 겨우 버텼다. '잘 모르는 비싼 배를 싸게 받으면 큰일 난다'는 교훈이 지금 한국 조선소의 신중한 수주로 이어진다.
군함은 나라마다 자국 조선소에서 짓는 게 보통이라 수출 시장이 작았다. 그런데 최근 미국 해군이 배를 고치고 지을 조선소가 모자라면서 한국 조선소에 기회가 열리고 있다. 이 이야기는 심화 주제로 따로 다룬다. 연결: 방산·우주.
2-7. 비싼 배는 한국, 많은 배는 중국 — 왜일까
최근 몇 년 세계 선박 주문을 CGT로 세면 중국이 절반을 훌쩍 넘고 한국이 20% 안팎이다. 2025년 한 해 기준으로 중국이 약 63%를 가져갔다는 집계가 있다. 숫자만 보면 중국이 압도적이다.
그런데 배 종류를 나눠 보면 그림이 달라진다. 중국은 벌크선, 중소형 컨테이너선, 자동차운반선처럼 표준화된 배를 많이, 싸게 짓는다. 자국 해운사와 국영 에너지 회사라는 큰 내수 고객이 있고, 정부의 금융 지원도 받는다. 한국은 도크 수가 한정돼 있으니 LNG선, 대형 컨테이너선, 친환경 연료 선박처럼 척당 값과 이익이 큰 배에 도크를 몰아 쓴다. '양의 중국, 질의 한국'이라는 표현이 여기서 나왔다.
이 구도는 고정된 게 아니다. 중국은 LNG선과 대형 컨테이너선에서도 빠르게 경험을 쌓고 있고, 한국은 인력 부족과 높은 원가가 숙제다. 반대로 미국이 중국 조선소에서 지은 배에 항만 수수료를 물리겠다고 나서면서, 국적에 따른 '정치적 프리미엄'이라는 변수도 생겼다. 연결: 세계·지정학.
핵심 정리
배는 싣는 화물에 따라 벌크선, 유조선, 컨테이너선, LNG선으로 나뉘고, 뒤로 갈수록 만들기 어렵고 비싸다. 단순한 배는 원가가 싼 중국이, 복잡하고 비싼 배는 경험이 쌓인 한국이 주로 만든다. 다만 LNG선의 핵심 기술료는 프랑스 GTT가 가져가는 것처럼, 배 한 척 안에도 여러 나라의 몫이 섞여 있다.
그런데 한국은 처음부터 이렇게 비싼 배를 만들 수 있었을까? 조선 1등 자리는 영국에서 일본으로, 다시 한국과 중국으로 옮겨 왔다. 다음 편은 그 주도권이 어떻게, 왜 넘어갔는지의 이야기다.
다음 편 예고 — 영국에서 일본, 한국, 중국으로: 조선 주도권의 이동
배를 가장 많이 만드는 나라가 왜 계속 바뀌었는지, 그 뒤에 있던 돈과 정부와 사람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사진 출처
- 프랑스 앙티페르 항에서 원유를 내리는 VLCC 알가르브호: Hervé Cozanet, CC BY-SA 3.0 (위키미디어)
- 밤바다를 지나는 LNG선: Derek Keats, CC BY 2.0 (위키미디어)
- LNG선 화물창 내부: Thinfourth, CC0 (위키미디어)
숫자 출처
- 2025년 세계 선박 수주 중국 약 63%(CGT 기준, 클락슨 리서치 집계): https://www.steelorbis.com/steel-news/latest-news/china-claims-63-of-new-shipbuilding-orders-globally-in-2025-1428444.htm
- 2025년 1~11월 중국 59%, 한국 22%: https://www.steelorbis.com/steel-news/latest-news/china-claims-59-of-new-shipbuilding-orders-globally-in-jan-nov-2025-1426401.htm
- LNG선 신조선가(17만 4천㎥급): 클락슨 리서치 인용 보도, https://www.tradewindsnews.com/shipyards/clarksons-tracks-newbuilding-prices-upwards-as-orders-fall/2-1-1190908
- 카타르 LNG선 슬롯 계약(2020년): https://lngprime.com/contracts-and-tenders/qatarenergy-finalizes-hd-hyundai-lng-carrier-deal-as-talks-with-other-yards-continue/95828 [확인 필요: 슬롯 규모]
- 벌크선·VLCC 선가, GTT 로열티 비율, 해양플랜트 손실 규모: 대략치. 클락슨 리서치·각 사 공시로 확인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