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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찾아서] 1편

배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 도크와 블록

AI Written

2026.11.05 · 12분 · 조선·해운 / 배터리·소재 / 경제·시장

  1. 배 한 척은 얼마나 클까
  2. 주문부터 인도까지 — 수주 산업
  3. 강판을 자르고, 블록을 만든다
  4. 도크 — 거대한 레고 조립장
  5. 물에 띄운 뒤가 더 길다
  6. 돈은 언제 들어오나 — 헤비테일과 환율
  7. 결국 사람과 시간

배는 공장에서 찍어 내는 물건이 아니다. 주문을 먼저 받고, 강판을 잘라 수백 톤짜리 블록을 만들고, 그 블록을 거대한 도크에서 레고처럼 쌓아 올린 뒤, 물에 띄워 다시 몇 달을 더 다듬어야 한 척이 나온다. 배 한 척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과정에서 돈과 사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따라가 보자. 한국 조선소 주가가 왜 '수주 소식' 하나에 그렇게 출렁이는지도 여기서 답이 나온다.

1-1. 배 한 척은 얼마나 클까

먼저 크기부터 보자. 지금 바다에 떠 있는 가장 큰 컨테이너선은 길이가 약 400m다. 에펠탑(약 330m)을 눕혀도 70m가 남고, 축구장 네 개를 이어 붙인 길이다. 이런 배에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가 2만 4천 개 정도 실린다. 컨테이너 크기를 세는 단위가 TEU(Twenty-foot Equivalent Unit, 20피트 컨테이너 1개)인데, 이 배는 '2만 4천 TEU급'이라고 부른다.

값도 크기만큼 크다. 큰 컨테이너선이나 LNG선 한 척은 대략 2억~2억 6천만 달러, 우리 돈으로 3천억 원 안팎이다(대략치, 시기와 배 종류마다 다르다). 아파트 단지 하나 값이 바다 위에 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조선소는 한 해에 수십 척만 만들어도 매출이 수조~수십조 원이 된다.

이렇게 크고 비싼 물건이다 보니, 만드는 방식도 자동차나 스마트폰과 완전히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먼저 만들어 놓고 파는' 게 아니라 '주문을 받고 나서 만든다'는 점이다.

1-2. 주문부터 인도까지 — 수주 산업

배는 선주(배를 사서 운영하는 해운사나 선박 투자회사)가 조선소에 주문을 넣으면서 시작된다. 이 주문을 따내는 걸 수주라고 한다. 선주는 배의 크기, 속도, 연료, 화물 종류를 정하고 여러 조선소에 가격과 납기를 받아 본 뒤 한 곳을 고른다. 같은 컨테이너선이라도 선주마다 원하는 사양이 조금씩 달라서, 배는 대부분 주문 제작이다.

계약을 맺는다고 바로 철판을 자르는 것도 아니다. 조선소의 도크(배를 조립하는 거대한 작업장)는 이미 앞서 받은 배들로 차 있기 때문에, 새 배는 순서를 기다린다. 요즘처럼 주문이 밀린 시기에는 계약하고 2~3년, 길게는 3~4년 뒤에야 배를 받는다. 이렇게 계약은 했지만 아직 인도하지 않은 배의 양을 수주잔고라고 부른다. 수주잔고가 3년 치 쌓여 있다는 말은 앞으로 3년 동안 일감이 정해져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조선소 주가는 '지금 얼마를 벌었나'보다 '얼마나, 얼마에 주문을 받았나'에 더 크게 반응한다. 오늘 받은 주문이 2~3년 뒤의 매출과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이 시차가 조선업을 이해하는 첫 번째 열쇠다.

배 한 척이 만들어지는 순서 · 수주 → 설계 → 강재 절단 → 블록 제작 → 도크 탑재 → 진수 → 의장·시운전 → 인도
배 한 척이 만들어지는 순서. 계약에서 인도까지 보통 2~3년, 그중 실제 건조는 1~2년 정도다(대략치).

계약이 끝나면 설계부터 시작한다. 선주의 요구를 도면으로 바꾸고, 그 도면을 다시 수천 장의 작업 도면으로 쪼갠다. 그리고 드디어 강판을 자르는 날이 온다. 업계에서는 이 날을 '스틸 커팅(steel cutting)', 즉 착공이라고 부른다.

1-3. 강판을 자르고, 블록을 만든다

배의 몸통은 두꺼운 철판, 후판으로 만든다. 후판은 두께 6mm 이상의 두꺼운 강판인데, 큰 배 한 척에 수만 톤이 들어간다(대략치). 그래서 조선소는 포스코, 현대제철 같은 철강회사의 큰 고객이고, 해마다 '후판 가격 협상'이 뉴스가 된다. 후판값이 오르면 조선소 이익이 깎이고, 내리면 철강회사가 운다. 연결: 배터리·소재(철강).

강판은 레이저나 플라스마 절단기로 도면대로 자르고, 휘거나 구부려 곡면을 만든다. 배의 앞쪽과 바닥은 물의 저항을 줄이려고 둥글게 깎여 있어서, 철판 한 장 한 장을 열과 압력으로 정확하게 휘어야 한다. 이 곡면 작업은 아직도 숙련공의 손이 많이 간다.

자른 철판은 용접해서 블록으로 만든다. 블록은 배를 여러 덩어리로 나눈 조각이다. 집을 지을 때 벽돌을 하나씩 쌓는 대신 방 하나를 통째로 공장에서 만들어 와서 붙이는 것과 비슷하다. 큰 배 하나는 블록 수십~백수십 개로 나뉘고, 블록 하나 무게가 수백 톤에 이른다(대략치, 배 종류와 조선소마다 다르다) [확인 필요].

왜 굳이 블록으로 나눌까?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여러 블록을 여러 공장에서 동시에 만들 수 있어서 시간이 줄어든다. 둘째, 블록 상태일 때 배관이나 전선을 미리 깔아 두면 훨씬 쉽다. 배가 다 조립된 뒤에 좁은 방 안에 들어가 천장에 배관을 다는 것보다, 블록을 뒤집어 놓고 바닥처럼 작업하는 게 빠르고 안전하다. 이렇게 미리 장비를 다는 걸 '선행 의장'이라고 한다. 한국 조선소가 빨리 배를 짓는 비결 중 하나가 이 블록 공법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것이다.

1904년 미국 시애틀 조선소에서 크레인이 군함 갑판 구획을 들어 올리는 모습
1904년 미국 시애틀의 한 조선소. 크레인이 군함 갑판 한 구획을 통째로 들어 올려 제자리에 놓고 있다. 덩어리로 만들어 붙이는 방식은 이렇게 오래전부터 있었다.

1-4. 도크 — 거대한 레고 조립장

블록이 다 만들어지면 도크로 옮긴다. 도크는 바닷가를 깊게 파서 만든 거대한 웅덩이다. 물을 빼 놓은 상태에서 그 바닥에 블록을 하나씩 올려 배 모양을 완성하고, 다 되면 물을 채워 배를 띄운다. 블록을 도크에 올리는 일을 '탑재'라고 부른다.

수백 톤짜리 블록을 들어 올리는 건 '골리앗 크레인'이다. 다리 두 개가 도크를 가로질러 서 있는 거대한 문 모양의 크레인으로, 조선소 사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그 구조물이다. 큰 조선소의 골리앗 크레인은 한 번에 천 톤 넘게 들어 올린다 [확인 필요]. 울산 HD현대중공업에는 도크가 10개 정도 있고 [확인 필요], 이 도크들이 몇 척을 동시에 짓는다.

울산 HD현대중공업 조선소 전경과 골리앗 크레인
울산 HD현대중공업 조선소(2023). 붉은 문 모양의 구조물이 골리앗 크레인이다.

도크는 조선소의 '생산 능력' 그 자체다. 도크 수와 크기는 쉽게 늘릴 수 없다. 바닷가 땅, 깊은 바다, 큰 크레인, 그리고 그걸 돌릴 사람이 모두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문이 몰리면 도크 자리가 귀해지고, 조선소는 값을 올려 받을 수 있다. 반대로 주문이 끊기면 도크가 비어도 비용은 계속 나간다. 조선업이 호황과 불황을 크게 타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한국 조선소들은 도크가 모자랄 때 도크 밖에서 배를 짓는 방법도 만들었다. 육지 위에서 배를 다 지은 뒤 바다로 밀어 넣는 '육상 건조', 바다에 떠 있는 도크에서 짓는 '플로팅 도크' 같은 방식이다. 도크 한 자리를 아끼려고 이렇게까지 하는 걸 보면, 도크가 얼마나 귀한 자원인지 알 수 있다.

1-5. 물에 띄운 뒤가 더 길다 — 진수, 의장, 시운전

블록 탑재가 끝나면 도크에 물을 채워 배를 처음 물에 띄운다. 이것이 진수다. 하지만 이때의 배는 겉모양만 배다. 엔진은 들어가 있어도 배관, 전선, 조종 장치, 선원이 지낼 방이 아직 다 갖춰지지 않았다.

네덜란드 조선소에서 화물선이 진수되는 모습
2012년 네덜란드의 한 조선소에서 화물선이 진수되는 모습. 강이 좁은 조선소에서는 배를 옆으로 미끄러뜨려 물에 띄운다.

그래서 진수한 배는 조선소 부두(안벽)에 묶어 두고 남은 장비를 달고 마무리한다. 이 일을 '의장'이라고 부른다. 큰 배 한 척에 깔리는 전선 길이는 수백 km에 이른다(대략치) [확인 필요]. 서울에서 부산까지 전선을 까는 셈이다. 특히 LNG선처럼 복잡한 배는 의장 기간이 길고, 조선소 실력이 가장 크게 드러나는 구간이다.

의장이 끝나면 바다로 나가 실제로 배를 몰아 보는 시운전을 한다. 최고 속도, 연료 소모, 급정거, 방향 전환까지 계약서에 적힌 성능이 나오는지 선주 앞에서 확인한다. 성능이 모자라면 조선소가 배상금을 물어야 하니 긴장되는 순간이다. 시운전을 통과하면 이름을 붙이는 명명식을 하고 선주에게 배를 넘긴다. 이것이 인도다.

1-6. 돈은 언제 들어오나 — 헤비테일과 환율

여기까지 오는 데 2~3년이 걸렸다. 그러면 조선소는 배값을 언제 받을까? 계약 때 한꺼번에 받는 게 아니라 단계마다 나눠서 받는다. 보통 계약, 착공, 탑재, 진수, 인도 다섯 번에 걸쳐 받는다.

문제는 그 비율이다. 조선업이 어려웠던 2010년대에는 선주가 힘이 셌다. 그래서 계약·착공 때는 조금만 내고 인도할 때 배값의 절반 이상을 몰아서 내는 방식이 흔해졌다. 꼬리(tail)가 무겁다고 해서 헤비테일이라 부른다. 조선소는 2~3년 동안 자기 돈이나 빌린 돈으로 배를 짓다가 마지막에 큰돈을 받는다. 그 사이 강판값이나 인건비가 오르면 손해는 고스란히 조선소 몫이다.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다. 2020~2021년 주문이 부족하던 때 한국 조선소들은 낮은 값에라도 일감을 채웠는데, 이후 후판값과 인건비가 크게 오르면서 그 배들을 짓는 동안 적자를 냈다. 반대로 2021년 이후 높은 값에 받은 배들이 2023~2024년부터 본격적으로 건조되면서 이익이 크게 늘었다. 2~3년의 시차가 이익에 그대로 찍힌 것이다.

또 하나, 배값은 거의 달러로 받는다.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같은 달러를 받아도 원화로 바꾼 매출이 커진다. 그래서 조선소는 환율 움직임에도 민감하고, 갑자기 환율이 출렁일 때를 대비해 미리 환율을 고정하는 계약(환헤지)을 맺어 둔다. 연결: 경제·시장(환율).

선주 입장에서도 걱정이 있다. 미리 낸 돈을 받고 조선소가 망하면? 그래서 은행이 '조선소가 배를 못 만들면 선수금을 대신 돌려주겠다'는 보증서를 써 준다. 이를 RG(Refund Guarantee, 선수금 환급 보증)라고 한다. 조선소가 어려울 때 은행이 RG를 안 써 주면 주문을 받고도 계약을 못 하는 일이 생긴다. 조선업이 정부, 국책은행과 가까이 붙어 있는 이유다.

1-7. 결국 사람과 시간

블록 공법과 자동화가 발전했어도 배는 여전히 사람이 만든다. 좁은 공간에서 용접하고, 배관을 잇고, 페인트를 칠하는 일은 로봇이 대신하기 어렵다. 그래서 조선소는 직접 고용한 직원보다 협력업체(하청) 노동자가 더 많은 경우가 흔하다.

이 구조는 불황 때 문제를 키웠다. 2015~2016년 조선업 불황 때 일감이 줄자 많은 숙련공이 조선소를 떠났고, 상당수가 돌아오지 않았다. 일이 위험하고 힘든 데 비해 임금이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2020년대 호황이 오자 이번에는 사람이 모자랐다. 지금 한국 조선소들은 외국인 노동자 비중을 늘리고, 자동화 로봇과 디지털 공정 관리로 빈자리를 메우려 하고 있다. 연결: 정치·사회(노동, 인구).

정리하면 조선소의 힘은 세 가지에서 나온다. 도크라는 쉽게 늘릴 수 없는 설비, 블록·의장을 빠르게 해내는 공정 노하우, 그리고 그 일을 해낼 숙련된 사람이다.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있어야 비싸고 복잡한 배를 제때 만들 수 있다.

핵심 정리

배는 주문을 먼저 받고 2~3년에 걸쳐 짓는 수주 산업이다. 강판으로 블록을 만들고, 도크에서 쌓고, 물에 띄운 뒤 의장과 시운전을 거쳐 인도한다. 돈은 단계별로 들어오는데 마지막에 몰리는 경우가 많아서, 계약 시점의 배값과 그 사이 원가·환율 변화가 몇 년 뒤 이익을 결정한다.

그럼 이 모든 과정을 거쳐 만드는 배는 어떤 배일까? 같은 배라도 값과 난이도가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다음 편에서는 돈이 되는 배와 그렇지 않은 배를 나눠 본다.

다음 편 예고 — 돈 되는 배: LNG선·컨테이너선·유조선

배의 종류별로 무엇을 싣고, 얼마나 하고, 왜 어떤 배는 한국이, 어떤 배는 중국이 주로 만드는지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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