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를 찾아서] 2편
누가 처음 만들었고, 왜 지금 이렇게 난리일까?
AI WrittenEdited by Injeong
반도체의 역사는 사실상 회사들의 역사다. 트랜지스터와 칩을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 주도권이 왜 미국에서 일본으로, 다시 한국과 대만으로 넘어갔는지 따라간 뒤, 반도체가 지금 왜 이렇게 난리인지까지 살펴보자. 과연 지금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엔비디아(NVIDIA)의 주식을 쓸어 담아도 되는 것인가?
2-1. 미국에서 시작되다 — 벨연구소, TI, 페어차일드, 인텔
1947년, 벨연구소
1편에서 본 트랜지스터는 미국 전화회사 AT&T의 연구소인 벨연구소에서 처음 태어났다. 미국 물리학자 존 바딘, 월터 브래튼, 윌리엄 쇼클리가 게르마늄으로 만든 점접촉 트랜지스터다. 목표는 전화망을 채우던 진공관을 바꾸는 것이었다. 진공관은 필라멘트를 달궈야 전자가 나와서 크고 뜨겁고 자주 끊어졌는데, 트랜지스터는 달굴 것이 없으니 작고 열이 적고 오래갔다. 세 사람은 1956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는다.



① 바딘, 쇼클리, 브래튼. 1948년 벨연구소. ② 진공관. 유리관 안에서 필라멘트를 달궈 전자를 내보낸다. ③ 최초의 트랜지스터(복제품). 1947년 점접촉 트랜지스터를 50주년인 1997년에 다시 만든 것이다.
1954년, TI(텍사스 인스트루먼트)
그런데 트랜지스터를 처음 돈이 되는 제품으로 만든 곳은 벨연구소가 아니었다. AT&T는 독점 기업이라는 정부의 압박 속에서 1952년 트랜지스터 기술을 다른 회사들에 2만 5천 달러에 팔았고, 이걸 산 회사 중 하나가 석유 탐사 장비를 만들던 TI였다. TI는 1954년 실리콘 트랜지스터를 처음 상용화했다. 실리콘은 게르마늄보다 열에 강해서 뜨거운 곳에서도 잘 버텼고, 그래서 군용 장비에 쓰기 좋았다. 같은 해 TI 트랜지스터를 넣은 주머니 크기의 라디오(리전시 TR-1)도 나왔다. 진공관 라디오가 가구만 하던 시절이니, 트랜지스터가 대중에게 처음 보여준 가치는 '작아진다'는 것이었다.


① 리전시 TR-1(1954). TI 트랜지스터를 넣은 첫 상용 트랜지스터 라디오다. ② 1950년대 GE의 게르마늄 트랜지스터들. 다리 셋 달린 작은 깡통 하나가 트랜지스터 하나다.
1957년, 페어차일드
트랜지스터가 팔리기 시작하자 실리콘으로 더 좋은 트랜지스터를 만들려는 경쟁이 붙었다. 쇼클리도 벨연구소를 나와 1956년 캘리포니아에 자기 회사를 차렸지만 그의 독단적인 경영에 지친 젊은 연구원 8명이 이듬해 회사를 나와 페어차일드 반도체를 세웠다. 이 중에 미국인 엔지니어 로버트 노이스와 화학자 고든 무어가 있었다. 페어차일드에서 나온 사람들이 다시 인텔, AMD 같은 회사를 차리면서 그 일대가 실리콘밸리가 된다.
1958~59년, IC의 탄생
트랜지스터를 많이 쓰게 되자 이번에는 부품을 잇는 선이 문제가 됐다. 기계 하나에 손으로 납땜할 연결이 수천 군데로 늘었고, 그중 하나만 떨어져도 기계 전체가 멈췄다. 1958년 TI의 미국인 엔지니어 잭 킬비가 부품 여러 개를 반도체 한 조각 위에 함께 만든 최초의 IC(집적회로)를 선보였다. 이듬해 페어차일드의 노이스는 실리콘 평면 공정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한 IC를 내놓았다. 같은 무렵(1959년) 벨연구소에서는 1편에서 본 MOSFET이 나왔다.

1960년대, 첫 고객은 정부
처음 나온 IC는 너무 비싸서 일반 회사는 살 엄두를 못 냈다. 대신 미국 정부가 샀다. 아폴로 우주선의 유도 컴퓨터와 미닛맨 미사일은 무게와 크기를 줄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서, 비싼 값을 치르고 IC를 대량으로 사 주었다. 생산량이 늘자 가격이 빠르게 떨어졌다. 반도체가 처음부터 국방·안보와 얽혀 있었다는 점은 지금의 미중 갈등을 이해하는 바탕이 될 수도 있다.
1968년, INTEL(인텔)
IC 값이 떨어지자 이제는 일반 제품에 쓸 길이 열렸고, 노이스와 무어는 1968년 페어차일드를 나와 인텔을 세웠다. 인텔의 첫 사업은 CPU가 아니라 메모리였다. CPU가 실제로 계산을 하는 칩이라면, 메모리는 CPU가 계산할 숫자와 계산 결과를 잠시 저장해 두는 칩이다. 컴퓨터는 메모리에서 데이터를 꺼내 CPU에서 계산하고, 결과를 다시 메모리에 적는 일을 쉬지 않고 반복한다. 그래서 메모리 없이는 CPU도 일을 할 수 없다.
1970년 내놓은 1103(1Kb DRAM)은 당시 컴퓨터 메모리였던 자석 코어 메모리보다 작고 싸서 크게 팔렸다. 1971년에는 일본 계산기 회사 비지콤의 주문으로 계산기용 칩 4004를 만들었다. 인텔은 계약을 다시 협상해 4004를 다른 고객에게도 팔 권리를 되샀고, 이 칩이 8080, 8086으로 이어진다. 1981년 IBM이 개인용 컴퓨터(IBM PC)에 인텔 CPU를 고르면서 'PC = 인텔'의 시대가 열렸다.



① 앤디 그로브, 로버트 노이스, 고든 무어(1978). 헝가리 출신인 그로브는 창립 때 합류해 뒤에 인텔 CEO가 된다. ② 인텔 1103(1970). 자석 코어 메모리를 밀어낸 DRAM이다. ③ 인텔 4004(1971). 계산기용으로 만든 칩이 CPU의 시작이 됐다.

벨연구소에서 시작된 사람의 흐름이 페어차일드에서 여러 갈래로 나뉘며 실리콘밸리가 됐다. 페어차일드에서 나온 회사들을 '페어칠드런(Fairchildren)'이라고 부른다.
2-2. 일본의 DRAM 장악, 인텔의 후퇴
인텔이 CPU로 PC 시대를 열던 바로 그때, 인텔이 처음 열었던 메모리 시장은 일본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1970년대 말부터 NEC·히타치·도시바 같은 일본 대기업이 DRAM에 뛰어들었다. DRAM(Dynamic Random Access Memory)은 앞에서 본 메모리, 즉 CPU가 계산할 데이터를 잠시 올려 두는 칩의 대표 종류다. 인텔 1103도 DRAM이었다. 읽고 쓰는 속도가 빠른 대신 전원이 꺼지면 내용이 지워진다. 휴대폰 사진처럼 꺼져도 남아야 하는 데이터는 낸드플래시(NAND Flash)라는 다른 메모리에 저장한다. 일본 정부는 1976년 초LSI(VLSI, Very Large Scale Integration: 초대규모 집적회로) 공동 연구 프로젝트로 여러 회사의 기술 개발을 묶어 주었다.
일본이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DRAM이라는 제품의 성격에 있다. DRAM은 어느 회사 것이든 기능이 같은 표준 제품이라, 설계보다 공장을 얼마나 잘 돌리느냐가 승부다. 일본 회사들은 웨이퍼 한 장에서 나오는 정상 칩의 비율(수율)을 높이고 불량을 줄여 더 싸고 튼튼한 DRAM을 내놓았다. 1980년대 중반 일본은 세계 DRAM 시장의 4분의 3 가까이를 차지했다.
가격 경쟁에 밀린 인텔은 1985년 자신이 처음 열었던 DRAM 사업에서 물러나 CPU에 집중하기로 한다. (돌아보면 이 후퇴가 이후 30년 인텔의 전성기를 만들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자세히...) 미국 정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1986년 미·일 반도체 협정으로 일본 메모리에 가격 하한을 걸고, 일본 시장에서 외국산 칩의 점유율을 높이라고 요구했다. 반도체에서 국가는 구경만 하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이때의 교훈이다.
2-3. 한국의 추격 — 삼성과 현대(현 SK하이닉스)
일본 메모리 값이 협정으로 묶인 틈을 파고든 것이 한국이다. 삼성의 출발점은 한국반도체다. 1974년 1월 모토로라 출신의 재미 엔지니어 강기동 박사가 미국 회사와 함께 세운 이 회사가 자금난에 빠지자, 같은 해 12월 이병철 회장의 아들 이건희(뒤에 삼성 회장)가 사재로 지분 절반을 샀다. 1977년 삼성이 나머지를 사들여 반도체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고, 1983년 이병철 회장이 도쿄에서 메모리 사업 본격 진출을 선언했다('도쿄 선언'). 같은 해 64Kb DRAM을 개발한 뒤 세대마다 격차를 줄였고, 1992년 세계 최초로 64Mb DRAM을 내놓으며 DRAM 세계 1위에 올랐다. 이 자리를 30년 넘게 지켜왔다.

현대그룹도 1983년 현대전자를 세워 반도체에 뛰어들었다. 1999년 정부 주도 '빅딜'로 LG반도체를 합병했고, 2001년 하이닉스로 이름을 바꾼 뒤 채권단 관리를 거쳐 2012년 SK그룹에 인수돼 SK하이닉스가 됐다. SK하이닉스는 2013년 세계 최초로 HBM(High Bandwidth Memory, 고대역폭 메모리)을 개발했다. DRAM 칩을 여러 층 쌓아 한 번에 더 많은 데이터를 주고받게 만든 메모리인데, 이것이 10년 뒤 AI 시대의 큰 무기가 된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일본을 이겼을까? 답은 '불황에도 투자를 멈추지 않은 것'이다. 앞에서 본 대로 DRAM은 표준 제품이라, 값이 수요와 공급에 따라 크게 오르내린다. 그래서 불황에 버티며 다음 세대 공장을 지은 쪽이 호황에 돈을 쓸어 담는다. 이 '치킨 게임'에서 일본·독일·대만의 DRAM 회사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갔고, 지금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미국 마이크론 3사가 남았다.
2-4. 분업의 시대 — TSMC와 Fabless(팹리스)
메모리가 몇 개 회사의 체력 싸움이 되는 동안, 대만에서는 칩을 만드는 방식 자체를 바꾼 회사가 나왔다. 1980년대까지 칩 회사는 설계부터 생산까지 다 하는 것이 당연했다. 이런 회사를 IDM(Integrated Device Manufacturer, 종합 반도체 기업)이라 부르는데, 인텔·TI·삼성 모두 그랬다. 문제는 칩 공장(팹)이 갈수록 비싸졌다는 것이다.
1987년 TI 부사장 출신인 모리스 창(중국 태생으로 미국에서 공부하고 일한 엔지니어)이 대만 정부의 지원을 받아 TSMC를 세웠다. TSMC는 자기 칩을 만들지 않고 남이 설계한 칩만 만들어 주는 순수 파운드리를 내세웠다. 파운드리(foundry)는 원래 쇳물을 부어 물건을 찍어 내는 '주물 공장'이란 뜻인데, 반도체에서는 남의 설계도를 받아 칩을 대신 만들어 주는 회사를 가리킨다. 고객의 설계를 베끼거나 고객과 경쟁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① TSMC 창업자 모리스 창(2018). ② 대만 남부 과학단지의 TSMC 팹 18(2025). 최첨단 칩이 이런 공장에서 나온다.
덕분에 공장 없이 설계만 하는 팹리스(Fabless. 공장을 뜻하는 fab에 '없다'는 뜻의 -less가 붙은 말) 회사들이 살아남을 수 있게 됐다. 팹을 짓지 않고 빌려 쓸 수 있으니 작은 회사도 설계만 잘하면 칩을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통신칩의 퀄컴(1985년 설립), 그래픽칩의 엔비디아(1993년), 아이폰 칩을 직접 설계하기 시작한 애플이 대표적이다. 칩의 설계 구조 자체를 팔고 로열티를 받는 영국의 ARM(1990년) 같은 회사도 나왔다. AMD는 2009년 공장을 떼어내 팹리스가 됐다.
그 결과 지금은 '설계는 미국, 제조는 대만·한국, 장비는 미국·네덜란드·일본, 소재는 일본'이라는 분업 구조가 자리 잡았다. 인텔은 2010년대 미세화 일정이 여러 번 밀리며 제조 선두를 TSMC에 내줬고, 지금은 자신도 파운드리가 되겠다며 반격을 노리고 있다. 삼성은 메모리와 파운드리를 함께 하는 거의 유일한 회사다.

연표를 보면 판이 두 번 크게 바뀐다. 1980년대에는 메모리 주도권이 미국에서 일본으로, 다시 한국으로 넘어갔고, 1990년대 이후에는 대만의 파운드리가 제조의 중심이 됐다.

숫자로 보면 더 뚜렷하다. 1987년 일본 회사들이 세계 DRAM의 약 75%를 쥐었지만, 1998년 한국에 1위를 내줬다. 일본의 마지막 DRAM 회사였던 엘피다는 2012년 파산해 미국 마이크론에 넘어갔고, 지금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회사가 세계 DRAM의 약 70%를 차지한다.
2-5. 주인공 칩이 바뀌면 주인공 회사도 바뀐다 — PC, 스마트폰, AI
판이 바뀐 이유를 칩 쪽에서 보면 더 단순하다. 한 칩에 들어가는 트랜지스터 수가 크게 늘 때마다 새 제품이 열렸고, 그 제품의 칩을 쥐는 회사가 그 시대의 주인공이 됐다.
PC 시대 (1980~90년대)
1981년 IBM PC에 들어간 인텔 8088에는 트랜지스터가 약 3만 개 들어 있었다. 문서 작성과 스프레드시트를 돌리기엔 충분했고, 이 시대의 승자는 CPU의 인텔과 운영체제의 마이크로소프트였다.

스마트폰 시대 (2007년~)
2007년 아이폰이 나오면서 컴퓨터가 손 안으로 들어왔다. 스마트폰 칩은 배터리로 하루를 버텨야 해서 전기를 적게 먹는 게 가장 중요했고, 그래서 저전력 설계에 강한 ARM 구조가 표준이 됐다. 애플·퀄컴이 칩을 설계하고 TSMC가 만드는 분업 구조도 이 시대에 완성됐다.

그 사이, GPU의 변신 (게임 → 채굴 → AI)
다음 시대의 주인공인 GPU는 처음부터 AI 칩이 아니었다. 지금이야 AI 칩의 황..제이지만 원래는 이런 운명이 아니었다. 엔비디아는 1993년 캘리포니아에서 젠슨 황 등 세 사람이 세운 미국 회사로, 처음 20년 동안은 PC 게임용 그래픽카드 회사였다. 1999년 지포스 256을 내며 'GPU'라는 이름을 처음 썼고, 고객은 더 매끄럽게 게임을 하고 싶은 게이머들이었다. 게이머가 먹여 살리는 회사였다.
GPU는 원래 게임 화면을 그리는 칩이다. 화면의 점(픽셀) 수백만 개에 색을 칠하려면 단순한 계산을 수천 개씩 동시에 해야 한다. 그래서 GPU는 복잡한 일을 하나씩 처리하는 CPU와 달리, 작은 계산기를 수천 개 모아 놓은 구조가 됐다.
▶ 영상: 미스버스터즈의 애덤 새비지와 제이미 하이네만이 페인트볼 로봇으로 보여 주는 CPU와 GPU의 차이(엔비디아 NVISION 2008). 하나씩 찍는 로봇과 한 번에 수천 발을 쏘는 로봇이 모나리자를 그린다. https://www.youtube.com/watch?v=-P28LKWTzrI
이 '동시 계산' 능력은 게임 밖에서도 쓸모가 있었다. 2017년과 2021년 이더리움 같은 암호화폐 값이 뛰자, 채굴(정답이 나올 때까지 같은 계산을 끝없이 반복하는 일)을 하려는 사람들이 그래픽카드를 쓸어 갔다. 게이머들이 웃돈을 주고도 못 사는 일이 벌어진 것도 이때다. AI 학습도 결국 같은 모양의 곱셈·덧셈을 엄청나게 많이 반복하는 일이다. 그래서 게임용으로 다듬어진 GPU가 AI에 그대로 들어맞았다. 엔비디아가 2006년 GPU로 게임 말고 일반 계산도 할 수 있게 해 주는 도구 CUDA를 내놓은 덕분에, AI 연구자들은 게임용 그래픽카드를 사다 AI를 학습시켰다. 게이머와 채굴업자가 키운 회사가 결국 AI 칩의 주인공이 된 셈이다.
대 AI 시대 (2020년대)
그리고 지금은 AI다. 엔비디아의 데이터센터용 GPU 하나에는 트랜지스터가 약 800억 개(H100, 2022년)에서 약 2,000억 개(B200, 2024년)까지 들어 있다. 이 GPU를 수만 장 묶어 하나의 거대한 컴퓨터처럼 쓰면서 ChatGPT 같은 생성형 AI를 학습시키고 돌린다. 이 시대의 주인공은 GPU를 설계하는 엔비디아, 그걸 만드는 TSMC, 그리고 GPU 옆에 붙는 HBM을 만드는 SK하이닉스다. 메모리는 모든 시대에 필요했고, 그 자리를 한국이 지켜왔다.


① 엔비디아 창업자이자 CEO인 젠슨 황(2023). 대만에서 태어나 어릴 때 미국으로 건너갔다. ② 엔비디아 H100(2022). 데이터센터용 GPU 카드다.
띠용? 삼성전자는?
메모리 1위였던 삼성전자의 이름이 여기에 없는 것은 HBM 때문이다. 삼성전자도 HBM을 만들지만, 2023~2024년 엔비디아 GPU에 들어갈 HBM의 품질 인증에서 한동안 SK하이닉스에 밀렸다. 그 사이 AI 붐의 첫 수혜를 SK하이닉스가 거의 혼자 가져갔다.
그런데도 삼성전자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메모리 전체가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AI 서버는 HBM뿐 아니라 일반 DRAM과 데이터를 저장하는 낸드플래시도 대량으로 쓴다. 메모리 값이 오르면 메모리를 가장 많이 만드는 삼성이 가장 크게 버는 구조다. 여기에 HBM 추격과 파운드리 사업까지 살아나면 다시 판을 뒤집을 수 있느냐가 지금 시장의 관심이다.
그럼 지금의 AI 칩은 어떻게 생겼을까?
트랜지스터 2,000억 개가 든 칩도 시작은 아래 사진 같은 둥근 실리콘 판 한 장이다. 웨이퍼에서 완성된 AI 칩이 되기까지 네 단계를 거친다.


① 웨이퍼
지름 300mm(12인치), 두께 1mm가 안 되는 실리콘 원판이다. 한 장 위에 같은 칩을 수십~수백 개 바둑판처럼 한꺼번에 새긴다. 칩이 클수록 한 장에서 나오는 개수가 줄고, 결함 하나 때문에 버리는 면적도 커진다.
② 다이
웨이퍼에서 잘라낸 칩 하나다. 스마트폰 칩은 손톱만 하고, 데이터센터 GPU는 우표만 하다. GPU 다이는 노광 장비가 한 번에 찍을 수 있는 최대 크기에 거의 가깝다.
③ 패키지
다이를 기판에 올리고 덮어서 보드에 붙일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예전에는 1편에서 본 다리(핀)를 달았지만, 지금은 밑면에 작은 납볼 수천 개를 붙여 연결한다. 칩이 주고받을 신호가 너무 많아져서 다리로는 자리가 모자라기 때문이다.
④ AI 칩 패키지
엔비디아 GPU 같은 AI 칩은 GPU 다이 옆에 HBM 여러 개를 붙여 얇은 실리콘 판(인터포저) 위에 함께 올린다. TSMC의 CoWoS가 대표적인 방식이다. HBM은 DRAM 다이를 8~12층 쌓고 위아래로 뚫은 미세한 구멍(TSV)으로 이은 메모리다. HBM을 GPU 바로 옆에 붙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GPU가 아무리 빨라도 계산할 데이터를 제때 받지 못하면 놀게 되는데, 길이 짧고 넓을수록 한 번에 많이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의 AI 칩 하나는 사실 칩 여러 개를 한 판에 묶은 묶음이다.
1편의 트랜지스터 하나가 IC가 됐고, IC는 이제 여러 개가 묶인 시스템이 됐다. 그런데 이렇게 만들기 어려운 칩을 지금 전 세계가 서로 사겠다고 줄을 서 있다. 반도체가 왜 이렇게 난리인지, 이제 그 이야기를 해 보자.
2-6. 아.... 살껄.... 그래서 지금 왜 이렇게 난리일까
요즘 반도체 뉴스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세 가지가 한꺼번에 겹쳤기 때문이다. 사려는 쪽은 폭발적으로 늘었는데, 만들 수 있는 곳은 몇 군데뿐이고, 여기에 나라들까지 뛰어들었다.
수요: AI가 칩을 쓸어 담는다
앞에서 본 것처럼 생성형 AI는 GPU 수만 장을 묶어야 돌아간다. 2022년 말 ChatGPT가 나온 뒤 마이크로소프트·구글·아마존·메타 같은 빅테크가 데이터센터 경쟁에 뛰어들었고, 그 돈이 고스란히 칩 회사로 흘러갔다. 엔비디아의 데이터센터 매출은 2025년 2월부터 2026년 1월까지 1년 동안 약 1,940억 달러였다. 우리 돈으로 250조 원이 넘는 돈이다(대략치).
돈은 GPU에서 끝나지 않는다. GPU 하나에는 HBM이 여러 개 붙으니, GPU가 팔릴수록 HBM도 같이 팔린다. HBM 1위인 SK하이닉스는 2025년 영업이익 약 47조 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내고, 처음으로 삼성전자의 연간 영업이익을 넘어섰다. 영업이익률은 약 49%였다. 100원어치를 팔면 49원을 남기는 셈인데, 공장을 돌려 물건을 만드는 제조업에서는 한 자릿수 이익률이 흔하니 말이 안 되는 숫자다. 보통 아무리 잘해도 7~8%인데.... 2013년에 만든 HBM이 10년 만에 회사의 순위를 바꾼 것이다.

공급: 만들 수 있는 곳이 몇 곳밖에 없다.
사려는 사람이 많아도 만드는 곳이 많으면 값은 금방 안정된다. 반도체가 다른 점은 최첨단 칩을 만들 수 있는 곳이 손에 꼽는다는 것이다. 엔비디아 GPU는 사실상 TSMC만 만들고, GPU와 HBM을 한 판에 묶는 CoWoS 패키징도 TSMC가 쥐고 있다. HBM은 SK하이닉스·삼성전자·마이크론 세 곳만 만든다. 최첨단 공장 하나를 짓는 데 수십조 원과 몇 년이 걸리니, 수요가 갑자기 늘어도 공급은 바로 따라가지 못한다. 왜 이렇게 소수만 남게 됐는지는 뒤에서 따로 다룬다.
지정학: 칩 생산 = 나라의 힘. 나라들이 칩을 안보로 본다
1960년대의 미사일과 1986년 미·일 협정에서 봤듯, 반도체는 원래 국가가 끼어드는 산업이다. 지금은 그 상대가 중국이다. 미국은 2022년 10월부터 최첨단 AI 칩과 칩 제조 장비를 중국에 팔지 못하게 막았다. AI 칩을 많이 가진 나라가 경제에서도 군사에서도 앞서게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같은 해 8월에는 CHIPS법을 만들어 미국 땅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회사에 보조금을 주기 시작했고, TSMC와 삼성전자도 미국에 공장을 짓고 있다. 일본·유럽·한국도 보조금과 세금 혜택으로 공장을 끌어오려고 경쟁한다.

세 가지를 합치면 힘의 방향이 보인다. 사려는 쪽(빅테크)은 돈을 쏟아붓고, 만드는 쪽(엔비디아·TSMC·HBM 3사)은 몇 곳뿐이고, 나라들은 그 몇 곳을 자기 편으로 두려고 한다. 그래서 칩 회사 한 곳의 실적 발표가 세계 주식시장을 흔들고, 한국 증시도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를 따라 움직인다.
남는 질문은 하나다. 최첨단 칩은 왜 이렇게 몇 곳만 만들 수 있을까? 답은 트랜지스터를 더 작게 만드는 경쟁, 미세화에 있다.
다음 편 예고 — 미세화, 그리고 소수만 남는 이유
무어의 법칙, "3나노"의 진짜 의미, 업계가 부딪힌 벽과 그 답, 그리고 그 벽이 왜 산업을 소수의 게임으로 바꿨는지 다룬다.
사진 출처
- 바딘·쇼클리·브래튼: AT&T(벨연구소), 퍼블릭 도메인 (위키미디어)
- 진공관: Stefan Riepl, CC BY-SA 2.0 DE (위키미디어)
- 최초의 트랜지스터(복제품): 미국 연방정부, 퍼블릭 도메인 (위키미디어)
- 리전시 TR-1: Cmglee, CC BY-SA 3.0 (위키미디어)
- 1950년대 GE 트랜지스터: Engradio, CC BY-SA 3.0 (위키미디어)
- 킬비의 첫 IC 복제품: Florian Schäffer, CC BY-SA 4.0 (위키미디어)
- 그로브·노이스·무어: Intel Free Press, CC BY-SA 2.0 (위키미디어)
- 인텔 1103: Thomas Nguyen, CC BY-SA 4.0 (위키미디어)
- 인텔 4004: Thomas Nguyen, CC BY-SA 4.0 (위키미디어)
- 이병철: 작자 미상, 퍼블릭 도메인(한국 저작권 만료) (위키미디어)
- 모리스 창: 중화민국 총통부, CC BY 2.0 (위키미디어)
- TSMC 팹 18: 4300streetcar, CC BY 4.0 (위키미디어)
- IBM PC 5150: Boffy b, CC BY-SA 3.0 (위키미디어)
- 첫 아이폰: ArnoldReinhold, CC BY-SA 4.0 (위키미디어)
- 젠슨 황: 중화민국 총통부, CC BY 2.0 (위키미디어)
- 엔비디아 H100: 极客湾Geekerwan, CC BY 3.0 (위키미디어)
- 12인치 실리콘 웨이퍼: Peellden, CC BY-SA 3.0 (위키미디어)
- GPU·HBM 패키지: FritzchensFritz, CC0 (위키미디어)
숫자 출처
- 엔비디아 2026 회계연도(2025년 2월~2026년 1월) 실적: 엔비디아 실적 발표, 미국 SEC 공시
- SK하이닉스 2025년 실적: SK하이닉스 뉴스룸
- 1978~2001년 나라별 DRAM 점유율: 위키백과, 1986 U.S.–Japan Semiconductor Agreement
- 2025년 4분기 DRAM 매출 점유율(삼성전자 36%, SK하이닉스 32.1%, 마이크론 22.4%): 트렌드포스 자료, evertiq 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