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를 찾아서] 1편
반도체란 무엇인가
AI WrittenEdited by Injeong
반도체란 사람의 의도대로 전기를 통하게도 통하지 않게도 할 수 있는 물질이다. 이 성질이 어디서 나오는지 전기가 흐르는 원리부터 시작해, 실리콘과 도핑, PN 접합을 거쳐 트랜지스터와 IC 칩, 그리고 칩 하나에 스위치 수백억 개가 들어가기까지 차근차근 따라가 보자.
1-1. 전기는 왜 흐르고, 왜 안 흐르나
전기가 흐른다는 것은 물질 안에 자유롭게 움직이는 전자가 있다는 뜻이다. 물질마다 전자가 묶여 있는 층(가전자대)과 자유롭게 달릴 수 있는 층(전도대)이 있고, 그 사이 간격을 밴드갭이라고 부른다. 전자가 이 턱을 넘어야 전기가 흐른다. 구리 선 같은 도체는 이 턱(과속방지턱)이 아예 없어서, 전압을 조금만 걸어도 전기가 줄줄 흐른다.
| 구분 | 밴드갭 (대략) | 예 | 특징 |
|---|---|---|---|
| 도체 | 없음 | 구리, 알루미늄 | 항상 잘 흐름. 조절할 수 없음 |
| 반도체 | 약 1~3.5 eV | 실리콘 1.12, SiC 약 3.3, GaN 약 3.4 | 평소엔 잘 안 흐르지만 불순물·전압·빛·열로 바꿀 수 있음 |
| 부도체 | 약 9 eV | 유리·이산화규소(SiO2) | 거의 안 흐름. 절연막으로 쓰임 |

전자는 아래층(가전자대)에서 위층(전도대)으로 올라가야 달릴 수 있다. 도체는 두 층이 겹쳐 있고, 부도체는 턱이 너무 높고, 반도체만 넘을 만한 턱을 가졌다.
핵심은 반도체의 턱이 "적당히" 낮다는 점이다. 너무 높으면 아무리 건드려도 안 흐르고, 없으면 끌 수가 없다. 적당하니까 켜고 끌 수 있고, 켜고 끌 수 있으니까 0과 1을 표현할 수 있다.
1-2. 왜 하필 실리콘?
반도체 물질은 여러 개지만, 전 세계 칩의 대부분은 실리콘(Si)으로 만든다. 이유는 네 가지다.
흔하다. 지각에서 산소 다음으로 많은 원소(약 28%)다. 모래와 규석이 원료다.
밴드갭이 딱 좋다. 1.12 eV는 상온에서 저절로 전기가 새지 않을 만큼 높고, 작은 전압으로 켤 수 있을 만큼 낮다.
좋은 절연막을 스스로 만든다. 실리콘을 산소와 함께 가열하면 표면에 이산화규소(SiO2)가 깔끔하게 자란다. 이 얇은 유리막이 트랜지스터의 핵심 부품(게이트 절연막)이 됐다. 게르마늄이 밀린 결정적 이유다.
순도·단결정 기술이 쌓여 있다. 반도체용 실리콘은 순도 99.999999999%("일레븐 나인", 11N)까지 올린다. 70년 누적된 공정 지식 때문에 다른 물질로 갈아타기 어렵다.
다만 실리콘이 못하는 일도 있다. 고전압·고온을 견뎌야 하는 전기차 인버터나 충전기에는 밴드갭이 넓은 SiC(탄화규소), 고주파 통신·고속 충전기에는 GaN(질화갈륨)을 쓴다. 이를 "화합물 반도체" 또는 "전력 반도체"라고 부른다.
1-3. 도핑 — 성질이 바뀌지만, 이 도핑은 합법입니다.
순수한 실리콘은 전기가 거의 안 흐른다. 그래서 다른 원자를 아주 조금 섞어 성격을 바꾸는데, 이것을 도핑이라고 한다.
| 종류 | 넣는 원소 | 무슨 일이 생기나 | 전기를 나르는 것 |
|---|---|---|---|
| n형 | 인(P), 비소(As) — 손 5개 | 손 하나가 남아 전자가 떠돌아다님 | 전자(음전하, negative) |
| p형 | 붕소(B) — 손 3개 | 손 하나가 비어 빈자리(정공)가 생김 | 정공(양전하처럼 움직임, positive) |

원자는 맨 바깥 껍질에 전자 8개가 차야 안정하다. 실리콘은 바깥 전자가 4개라, 이웃 실리콘 4개와 하나씩 나눠 가지며(공유 결합) 8개를 채운다. 모든 전자가 결합에 묶여 있으니 돌아다닐 전자가 거의 없다. 여기에 바깥 전자가 5개인 인이 끼면 하나가 남아 떠돌고(n형), 3개인 붕소가 끼면 하나가 비어 빈자리(정공)가 생긴다(p형).
정공은 옆 결합의 전자가 빈자리로 옮겨 올 때마다 자리를 바꾼다. 자리 바꾸기 퍼즐에서 빈칸이 옮겨 다니듯, 빈자리가 움직이며 전기를 나른다.
1-1의 밴드갭으로 보면 더 잘 보인다. 도핑을 해도 턱(1.12 eV)은 그대로다. 대신 n형은 남는 전자가 전도대 바로 아래(약 0.05 eV)에, p형은 빈자리가 가전자대 바로 위에 생긴다. 순수한 실리콘에서는 전자가 1.12 eV를 한 번에 뛰어올라야 하지만, 도핑하면 불순물이 내놓은 전자가 전도대 바로 아래에서 기다리다가 0.05 eV만 올라가면 된다. 이 정도는 상온의 열만으로도 충분히 넘는 높이다.

그래서 순수한 실리콘에서는 전기가 거의 안 흐른다. 하지만 n형에서는 불순물이 내놓은 전자가 전도대로 올라가면 더 이상 어느 원자에도 묶이지 않은 자유 전자가 된다. 이때 양쪽에 전압을 걸면 이 전자들이 + 쪽으로 끌려가며 결정 속을 이동하고, 이 흐름이 곧 전류다. p형에서는 전압을 걸면 빈자리 바로 옆 결합의 전자가 + 쪽으로 한 칸 건너와 빈자리를 채우고, 그 전자가 떠난 자리에 새 빈자리가 생긴다. 이것이 반복되면 전자들은 + 쪽으로 한 칸씩 옮겨 가고 빈자리는 반대인 − 쪽으로 옮겨 가는데, 이것 역시 전류다. 분명 전기가 잘 안 흐르던 실리콘인데 불순물을 아주 조금 넣는 것만으로 전기가 흐르는 길이 열린다.
그럼 '아주 조금'은 실제로 얼마일까? 웨이퍼 바탕은 실리콘 원자 수백만~수천만 개에 하나, 트랜지스터의 소스·드레인은 수백 개에 하나 꼴이다(대략치). 이것만으로 전기를 나르는 것이 수십만 배 이상 늘어난다. 거꾸로 원치 않는 불순물도 그만큼 민감하게 티가 난다. 그래서 11N 순도, 클린룸, 초순수 가스·화학약품이 필요하고, 이것이 소재 산업의 힘이 된다. 원하는 자리에 정확한 양만 넣는 공정이 이온주입이다.
정리하면, p형은 실리콘에 붕소가, n형은 인이 아주 조금 섞인 것이다. 눈으로 보면 둘 다 그냥 실리콘 조각이다. 실제 칩에서는 둘을 따로 만들어 붙이지 않고, 실리콘 판 한 장 안에 구역마다 다른 불순물을 넣어 나란히 만든다. 그럼 두 구역이 맞닿으면 무슨 일이 생길까?
1-4. PN 접합 —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문
p형과 n형을 붙이면 두 영역이 맞닿은 경계에서 전자와 정공이 서로 만나 없어지고, 나르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띠(공핍층)가 생긴다. 이 띠가 문 역할을 한다. 앙 기모띠.
한쪽 방향(순방향)으로 전압을 걸면 띠가 얇아져 전기가 잘 흐른다.
반대 방향(역방향)으로 걸면 띠가 두꺼워져 거의 안 흐른다.

왜 그럴까? 순방향에서는 전지의 +가 p쪽 정공을, −가 n쪽 전자를 경계 쪽으로 밀어서 둘 사이의 띠를 메운다. 역방향에서는 반대로 양쪽에서 끌어당겨 띠가 더 넓어진다. 회로도에서는 다이오드를 ▶| 모양으로 그리는데, 삼각형이 전류가 흐르는 방향(p→n)이고 세로선이 막히는 쪽이다. 휴대폰 충전기가 교류(AC)를 직류(DC)로 바꿀 때 쓰는 것이 바로 이 성질이다.
이것이 다이오드다. PN 접합은 반도체의 기본 레고 블록이다. 빛을 받으면 전기를 만드는 태양전지, 전기를 받으면 빛을 내는 LED, 빛을 전기 신호로 바꾸는 카메라 이미지센서가 모두 PN 접합의 응용이다.
1-5. 트랜지스터 — 전기로 전기를 켜고 끄는 스위치
다이오드는 한 방향으로만 열리는 문이지만, 언제 열지는 스스로 정하지 못한다. 전압 방향만 맞으면 그냥 열린다. 여기에 문을 열고 닫는 손잡이(세 번째 단자)를 하나 더 달아, 사람이 원할 때 전류를 켜고 끌 수 있게 만든 것이 트랜지스터다. 오늘날 칩 안의 거의 모든 트랜지스터는 MOSFET(Metal-Oxide-Semiconductor Field-Effect Transistor, 금속-산화막-반도체 전계효과 트랜지스터)이다. 부품은 다섯 개뿐이다.
| 부품 | 무엇인가 | 비유 |
|---|---|---|
| 소스(Source) | 전자가 출발하는 골 | 수도 입구 |
| 드레인(Drain) | 전자가 도착하는 골 | 수도 출구 |
| 채널(Channel) | 소스와 드레인 사이 실리콘 다리 | 수도관 |
| 게이트(Gate) | 채널 위에 올린 전극 | 수도꼭지 손잡이 |
| 게이트 절연막 | 게이트와 채널 사이의 아주 얇은 막 | 손잡이와 물이 섞이지 않게 하는 베어링 |
작동은 간단하다. 게이트에 전압을 걸면 그 전기장이 절연막 너머 실리콘의 전자를 끌어당겨 채널에 전자 다리가 생긴다. 그러면 소스에서 드레인으로 전류가 흐른다(On = 1). 전압을 끊으면 다리가 사라져 전류가 멈춘다(Off = 0). 게이트는 절연막으로 막혀 있어 스위치를 켜는 데 전류가 거의 들지 않는다. 이 점이 수십억 개를 한 칩에 넣을 수 있는 이유다.

왼쪽은 게이트에 전압이 없어 소스와 드레인이 끊긴 상태, 오른쪽은 게이트 전압이 절연막 아래에 전자 다리(채널)를 만들어 전류가 흐르는 상태다.
이 스위치를 어떻게 엮느냐에 따라 칩이 하는 일이 갈린다. 스위치 몇 개를 연결하면 AND·OR 같은 논리 게이트가 되고, 이것을 엮으면 CPU·GPU처럼 계산하는 칩(로직)이 된다. 스위치에 전하를 담는 그릇을 붙이면 값을 기억하는 칩(메모리)이 된다. DRAM과 NAND가 이 방식이다.
1-6. 트랜지스터의 두 종류 — BJT와 MOSFET
그런데 이 스위치 역할을 하는 트랜지스터에는 크게 두 종류, BJT와 MOSFET이 있다. 처음 주인공은 BJT였지만 지금 칩 속은 거의 전부 MOSFET이다. 왜 그렇게 됐는지, 그리고 이 차이가 지금의 반도체 산업 지도로 어떻게 이어지는지가 이 소주제의 핵심이다.
BJT — 작은 전류로 큰 전류를 여는 트랜지스터. 아마 고교시절 물리를 선택과목으로 하셨던 분은 익숙할 수도 있는 그림이다. BJT(Bipolar Junction Transistor, 쌍극성 접합 트랜지스터)는 p형과 n형을 P-N-P 또는 N-P-N 순서로 세 층 샌드위치처럼 붙인 구조다. 1-4의 PN 접합 두 개를 등을 맞대고 붙인 셈이다. 세 층에 다리가 하나씩 달린다.
이미터(E, Emitter): 전하를 내보내는 쪽.
베이스(B, Base): 가운데의 아주 얇은 층. 조작 손잡이 역할을 한다.
컬렉터(C, Collector): 이미터에서 온 전하를 모으는 쪽.

베이스에 작은 전류를 흘려 주면 이미터와 컬렉터 사이로 수십~수백 배 큰 전류가 흐른다. 작은 손잡이로 큰 수문을 여는 셈이다. 전류가 흐르면 문이 열리고, 전류가 끊기면 문이 닫힌다.
1950~60년대에는 트랜지스터 라디오 같은 전자제품의 주인공이었지만, 스위치로는 약점이 분명하다. 켜 두는 동안 베이스로 계속 전류를 흘려야 해서, 스위치 하나하나가 켜져 있는 내내 전기를 먹고 열을 낸다. 수백만 개를 한 칩에 넣으면 그 열을 감당할 수 없다.
MOSFET — 전압만 걸면 열리는 트랜지스터. MOSFET은 1-5에서 본 그 트랜지스터다. 이름이 곧 구조다. 금속(Metal, 게이트) - 산화막(Oxide, 절연막) - 반도체(Semiconductor, 실리콘)를 위에서 아래로 쌓고, 전기장의 힘(Field Effect)으로 조작하는 트랜지스터(Transistor)라는 뜻이다.
BJT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손잡이인 게이트가 절연막으로 막혀 있다는 것이다. 게이트에 전압을 걸면 그 전기장이 절연막 너머의 전자를 끌어당겨 채널을 만들 뿐, 게이트 자체로는 전류가 거의 흐르지 않는다. BJT가 손으로 수문 손잡이를 계속 붙잡고 있어야 하는 방식이라면, MOSFET은 자석을 가까이 대기만 하면 문이 열리는 방식이다. 켜진 상태를 유지하는 데 전력이 거의 들지 않는다.

MOSFET은 1959년 벨연구소의 모하메드 아탈라(이집트 태생, 미국으로 건너간 공학자)와 강대원(서울 태생, 서울대 졸업 후 1955년 미국으로 건너간 한국계 미국인 과학자)이 처음 만들었다. 1-2에서 본 실리콘의 장점, 즉 표면에 깔끔한 산화막(SiO2)이 자란다는 성질 덕분에 가능했다. 처음에는 BJT보다 느리고 불안정해서 주목받지 못했지만, 평평한 구조라 판 위에 촘촘하게 찍어내기 쉬웠다. 1963년 n형과 p형 MOSFET을 짝지어 쓰는 CMOS 방식이 나왔는데, 켜고 끄는 순간 말고는 전력을 거의 먹지 않는다. 이것이 1980년대 이후 칩의 표준이 됐다.
| 구분 | BJT | MOSFET |
|---|---|---|
| 구조 | P-N-P 또는 N-P-N 세 층 | 소스·드레인 위에 절연막과 게이트 |
| 다리(단자) | 이미터·베이스·컬렉터 | 소스·게이트·드레인 |
| 무엇으로 조작하나 | 베이스에 흘리는 전류 | 게이트에 거는 전압 |
| 켜 두는 데 드는 전력 | 계속 듦 | 거의 안 듦 |
| 작게 만들기 | 어려움 | 쉬움 (평평한 구조) |
| 잘하는 일 | 정밀한 아날로그 증폭 | 디지털 스위치, 대량 집적 |
| 어디에 쓰나 | 오디오 앰프, 센서 회로, 낱개 부품 | CPU·GPU·메모리, 전력용 MOSFET |
정리하면 BJT는 "전류로 전류를", MOSFET은 "전압으로 전류를" 조절한다. 칩 하나에 수백억 개를 넣으려면 스위치 하나가 먹는 전력이 거의 0이어야 한다. 그래서 칩 속은 MOSFET이 차지했고, BJT는 지금도 소리를 키우는 앰프나 센서 회로처럼 정밀한 증폭이 필요한 곳에서 낱개 부품으로 쓰인다.
실제로 어디에 쓰이나.
BJT: 오디오 앰프에서 작은 소리 신호를 키우고, 마이크·센서에서 나온 약한 신호를 증폭한다. 전원 회로나 아두이노 같은 취미용 전자 키트에서 LED·작은 모터를 켜고 끄는 스위치로도 흔히 쓴다.
낱개 MOSFET(전력용): 큰 전류를 빠르게 켜고 끄는 일을 맡는다. 전기차·드론의 모터 제어, 컴퓨터 메인보드의 전원부, 휴대폰 충전기 안에 들어 있다.
칩 속 MOSFET: CPU·GPU·메모리 안에 수십억~수백억 개가 들어 있다. 하나하나는 일반 현미경으로도 보기 어려울 만큼 작다.




산업으로 보면. 이 차이가 지금의 반도체 산업 지도로 이어진다. 칩은 하는 일에 따라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메모리: 스위치에 전하를 담아 기억한다(DRAM, NAND).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로직: 스위치를 엮어 계산한다(CPU, GPU, AI 칩). 설계는 엔비디아·애플·인텔 등, 생산은 TSMC·삼성 파운드리.
아날로그·전력: 전압을 바꾸고 신호를 키운다(전원 관리 칩, 전력용 MOSFET, 센서 칩). TI, 인피니언, ST.
메모리와 로직은 둘 다 MOSFET 스위치를 얼마나 작고 많이 만드느냐의 싸움이고, 돈과 기술이 가장 크게 모이는 곳도 여기다. 그래서 이 시리즈도 주로 이 두 갈래를 따라간다.
1-7. 낱개 트랜지스터와 IC 칩 — 다리 3개짜리와 다리 16개짜리는 뭐가 다른가
트랜지스터라고 하면 흔히 두 가지 모양이 떠오른다. 다리 3개짜리 작은 부품(낱개 트랜지스터)과 다리가 여러 개 달린 검은 직사각형(IC 칩)이다. 둘은 크기만 다를 뿐 같은 물건이 아니다.


| 구분 | 낱개 트랜지스터 | IC 칩 |
|---|---|---|
| 안에 든 트랜지스터 | 1개 | 수십 개~수백억 개 |
| 다리의 의미 | 트랜지스터의 세 단자(E·B·C 또는 S·G·D)에 바로 연결 | 칩 회로 전체를 바깥과 잇는 입출력·전원 핀 |
| 주로 쓰는 트랜지스터 | BJT(쌍극성 트랜지스터) 또는 전력용 MOSFET | 거의 전부 MOSFET |
| 쓰임 | 신호 증폭, 큰 전류 스위칭(모터·전원) | 계산, 기억, 제어 |
| 예 | PNP·NPN 트랜지스터, 전력 MOSFET | 74 시리즈 논리 칩, CPU, DRAM |
어떻게 한 판에 여러 개를 넣게 됐나. 초기엔 트랜지스터·저항·콘덴서를 따로 만들어 전선으로 이었다. 1958~59년 TI의 잭 킬비와 페어차일드의 로버트 노이스가 이 부품들을 반도체 한 판 위에 함께 만들고 금속 박막으로 잇는 방법을 내놓았다. 이것이 IC(집적회로)다. 특히 노이스의 방식은 실리콘 표면을 산화막으로 덮고 사진처럼 무늬를 찍어 만드는 평면 공정이었는데, 이 방식이 지금까지 이어져 판 하나에 들어가는 트랜지스터가 수십 개에서 수백억 개까지 늘었다. 이 회사들의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이어간다.
그럼 흔히 보는 "개미처럼 다리 달린 칩"은 뭘까? 그건 트랜지스터 하나가 아니라 패키지다. 검은 몸통은 속에 든 연약한 실리콘 조각(다이)을 보호하는 플라스틱 껍데기이고, 다리는 그 다이를 기판에 연결해 전원과 신호를 주고받는 핀이다. 아래 그림처럼 다이 안에는 트랜지스터가 수백만~수백억 개 들어 있고, 여러 층의 금속 배선이 이들을 이어 회로를 만든다.

그림을 한 단계 더 바깥으로 넓히면 웨이퍼가 나온다. 웨이퍼는 지름 300mm짜리 둥근 실리콘 판이다. 공장은 이 판 위에 똑같은 회로를 바둑판처럼 수백 개 한꺼번에 찍고, 다 만들면 칸마다 잘라낸다. 잘라낸 조각 하나가 다이고, 다이를 플라스틱 몸통에 넣고 다리를 달면 우리가 보는 IC 칩이 된다. 만드는 순서로 보면 웨이퍼(회로를 새김) → 다이(웨이퍼를 잘라 낱개로 만듦) → 패키지(다이를 포장해 칩으로 만듦)다. 웨이퍼 위에 회로를 새기는 단계를 전공정, 잘라서 다이로 만들고 포장하는 단계를 후공정이라고 부른다. 한 웨이퍼에서 칩이 몇 개 나오고 그중 몇 개가 제대로 작동하느냐(수율)가 반도체 회사의 돈벌이를 좌우하는데, 이는 뒤에서 따로 다룬다.
다리 개수는 트랜지스터 수가 아니라 칩이 바깥과 주고받아야 하는 신호 수로 정해진다. 요즘 CPU·GPU는 다리 대신 밑면에 수천 개의 작은 금속 점(볼)을 박아 연결한다. 이 패키징이 요즘 병목이 된 이유는 뒤에서 따로 다룬다.
다리 몇 개로 칩 속 트랜지스터 수억 개를 어떻게 다루나? 핀이 트랜지스터를 하나씩 직접 조작하는 게 아니다. 첫째, 전원은 공유한다. 전원 핀으로 들어온 전기가 위 그림의 금속 배선처럼 칩 안에 그물망으로 깔린 길을 타고 모든 트랜지스터에 나눠 들어간다. 둘째, 트랜지스터가 서로를 조작한다. 한 트랜지스터의 출력이 다음 트랜지스터의 게이트에 이어져 있어서, 핀으로 들어온 신호 몇 개가 도미노처럼 안쪽으로 퍼져 나간다. 전압만으로 다음 스위치를 켤 수 있는 MOSFET이라서 가능한 구조다. 셋째, 핀 하나로 여러 번 보낸다. 클럭(박자) 신호에 맞춰 같은 핀으로 초당 수십억 번씩 다른 0과 1을 주고받는다.
그래서 어느 순간을 멈춰 보면 칩 안의 수십억 개 트랜지스터가 각자 켜짐(1)이나 꺼짐(0) 상태로 있고, 박자가 뛸 때마다 앞 단계의 결과에 따라 다음 상태가 정해진다. 야구장 카드섹션과 비슷하다. 사람마다 카드를 들거나 내리고, 전체로 보면 그림이 되고, 박자마다 그림이 바뀐다. 스위치가 바뀔 때마다 전기가 조금씩 드는데, 이것이 칩이 뜨거워지는 주된 이유다.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폰이나 노트북 안에서도 바로 이 일이 일어나고 있다.
1-8. 칩 하나 = 스위치 수백억 개의 도시
트랜지스터 하나는 단순하지만, 오늘날 칩에는 이것이 수백억 개 들어간다(발표 기준 대략치).
| 칩 | 트랜지스터 수 (대략) |
|---|---|
| 인텔 4004 (1971, 최초의 상용 CPU) | 2,300개 |
| 인텔 펜티엄 4 (2000) | 약 4,200만 개 |
| 엔비디아 H100 (2022) | 약 800억 개 |
| 애플 M3 Max (2023) | 약 920억 개 |
| 엔비디아 B200 (2024, 다이 2개 연결) | 약 2,080억 개 |
인텔 4004에서 엔비디아 B200까지, 50여 년 만에 칩 하나에 들어가는 트랜지스터가 약 1억 배로 늘었다.
트랜지스터 2,300개로는 뭘 할 수 있었을까? 인텔 4004는 일본 비지콤(Busicom)의 탁상용 전자계산기를 위해 만들어졌다. 한 번에 4비트(0~15 사이 숫자 하나)만 다루고, 초당 약 74만 번 박자(740kHz)로 초당 명령을 약 6만~9만 번 처리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일은 계산기의 사칙연산, 금전등록기나 기계 제어 같은 단순한 일이었다. 그래도 의미는 컸다. 25년 전 방 하나를 채우던 진공관 컴퓨터 ENIAC과 비슷한 계산을 손톱만 한 칩 하나가 해냈고, "컴퓨터의 두뇌를 칩 하나에"라는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시대가 여기서 시작됐다.
컴퓨팅 파워는 어떻게 변해왔나 (대략치. 연산 종류가 달라 자릿수 감을 보는 용도)
| 연도 | 기기 | 초당 계산 횟수 | 의미 |
|---|---|---|---|
| 1946 | ENIAC (진공관 컴퓨터) | 덧셈 약 5천 번 | 방 하나 크기, 무게 약 27톤 |
| 1971 | 인텔 4004 | 명령 약 6만~9만 번 | ENIAC급 계산을 칩 하나로 |
| 1997 | ASCI Red 슈퍼컴퓨터 | 약 1조 번 (1 TFLOPS) | 처음으로 1조 돌파. 건물 한 층 규모 |
| 2020년대 | 스마트폰 칩 (GPU) | 약 1조~2조 번 | 1997년 세계 1위 슈퍼컴이 주머니 속에 |
| 2022 | Frontier 슈퍼컴퓨터 | 약 100경 번 (1 EFLOPS) | 최초의 엑사급 컴퓨터 |
| 2024 | 엔비디아 B200 GPU 1장 | AI용 저정밀 연산 약 1경 번 이상 | 정밀도를 낮춘 연산이라 위 숫자들과 직접 비교는 금물 |




표를 한 줄로 줄이면, 75년 동안 계산 속도는 수십조 배 이상 빨라졌고 방 하나가 칩 하나로, 슈퍼컴이 주머니로 들어왔다. 이 변화의 엔진은 스위치를 더 작게 만들어 더 많이 넣는 미세화다.
스위치 수백억 개를 손톱만 한 면적에 새기는 단계가 1-7에서 본 전공정이다. 판화처럼 회로 무늬를 빛으로 찍고(포토), 필요 없는 부분을 깎고(식각), 막을 쌓고(증착), 불순물을 넣고(이온주입), 평탄하게 갈고(CMP), 씻어내는(세정) 과정을 수백 번 반복한다. 선단 칩은 웨이퍼가 팹에 들어가 나오기까지 보통 3개월 안팎이 걸린다.
다음 편 예고 — 2편. 누가 처음 만들었고, 왜 지금 이렇게 난리일까? 벨연구소의 첫 트랜지스터부터 인텔, 일본, 삼성, TSMC, 엔비디아까지. 누가 무엇을 만들었고 그 칩으로 뭘 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지금의 칩은 어떤 모습인지 살펴본다.
사진 출처
- 2N3904 BJT: Windell Oskay, CC BY 2.0 (위키미디어)
- ULN2003 칩 속: Zeptobars.ru, CC BY 3.0 (위키미디어)
- 전력용 MOSFET: Suyash Dwivedi, CC BY-SA 4.0 (위키미디어)
- 인텔 486 DX2 칩 속: Pauli Rautakorpi, CC BY 3.0 (위키미디어)
- ENIAC: U.S. Army, 퍼블릭 도메인 (위키미디어)
- 인텔 4004: Thomas Nguyen, CC BY-SA 4.0 (위키미디어)
- Busicom 141-PF: Christian Bassow, CC BY-SA 4.0 (위키미디어)
- Frontier: Oak Ridge National Laboratory, CC BY 2.0 (위키미디어)
그림(도표)은 직접 그렸다. 낱개 트랜지스터·16핀 IC 사진은 직접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