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를 찾아서] 1편
배터리는 어떻게 전기를 저장하나 — 양극·음극·분리막·전해질
AI Written
스마트폰, 노트북, 전기차, 그리고 요즘은 데이터센터까지. 리튬이온 배터리 없이 돌아가는 기계를 찾기가 더 어렵다. 그런데 배터리는 정확히 무엇을 하는 물건이고, 그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배터리 안의 네 가지 재료를 따라가다 보면 한국 배터리 산업이 왜 셀 회사와 소재 회사로 나뉘어 있는지, 그리고 그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가 보인다.
1-1. 배터리는 전기를 담는 통이 아니다
배터리를 '전기를 담아 두는 통'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정확히는 전기를 화학 에너지로 바꿔 두었다가 다시 전기로 꺼내는 장치다. 전기는 그 자체로는 쌓아 둘 수 없기 때문이다.
리튬이온 배터리 안에서는 리튬이 움직인다. 리튬 원자가 전자 하나를 내놓으면 '리튬이온'이 되는데, 배터리는 이 리튬이온을 양쪽 끝(양극과 음극) 사이로 옮기면서 일한다. 충전할 때는 바깥에서 전기를 걸어 리튬이온을 양극에서 음극 쪽으로 밀어 넣는다. 쓸 때(방전)는 리튬이온이 다시 양극으로 돌아가고, 그때 떨어져 나온 전자가 배터리 바깥의 전선을 따라 흐르면서 휴대폰이나 모터를 움직인다. 리튬이온은 배터리 안쪽 길로, 전자는 바깥쪽 길로 가는 셈이다.
왜 하필 리튬일까? 리튬은 가장 가벼운 금속이고, 전자를 아주 쉽게 내놓는다. 그래서 같은 무게에 더 많은 에너지를 담을 수 있다. 이 원리를 다듬은 미국의 존 굿이너프, 영국 출신의 스탠리 휘팅엄, 일본의 요시노 아키라는 2019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리튬이온 배터리를 처음 상품으로 판 회사는 1991년 일본 소니다.
1-2. 배터리를 이루는 4대 소재
그림처럼 배터리 하나에는 네 가지 핵심 재료가 들어간다. 업계에서는 이를 '4대 소재'라고 부른다.
양극재는 리튬을 품고 있는 쪽이다. 리튬에 니켈, 코발트, 망간, 철 같은 금속을 섞어 만든다. 어떤 금속을 섞느냐에 따라 배터리가 얼마나 많이 담는지(용량), 얼마나 안전한지, 얼마나 비싼지가 정해진다. 4대 소재 중 가장 비싸고 중요하다. 이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따로 본다.
음극재는 충전할 때 리튬이온이 들어가 머무는 곳이다. 대부분 흑연(연필심의 재료와 같은 탄소)으로 만든다. 흑연은 탄소 원자가 얇은 층으로 겹겹이 쌓여 있어서, 그 층 사이에 리튬이온이 끼어 들어갈 수 있다. 최근에는 더 많이 담으려고 실리콘을 조금씩 섞는다.
분리막은 양극과 음극이 닿지 않게 막는 아주 얇은 플라스틱 막이다. 두 극이 직접 닿으면 순간적으로 큰 전류가 흘러 불이 날 수 있다. 분리막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구멍이 뚫려 있어서, 리튬이온은 지나가고 양극과 음극은 붙지 못한다.
전해질은 리튬이온이 헤엄쳐 다니는 액체다. 리튬이온이 양극과 음극 사이를 오가려면 지나갈 길이 필요한데, 그 길이 전해질이다. 지금의 전해질은 불에 잘 타는 유기 용매라서, 이것을 불에 안 타는 고체로 바꾼 것이 요즘 자주 들리는 '전고체 배터리'다.
1-3. 셀, 모듈, 팩
이 네 가지 재료를 차곡차곡 감거나 쌓아 하나로 포장한 것이 셀이다. 배터리의 가장 작은 단위다. 셀을 여러 개 묶어 틀에 넣은 것이 모듈, 모듈을 다시 여러 개 묶고 냉각 장치와 관리 장치(BMS, 배터리 관리 시스템)를 붙인 것이 팩이다. 전기차 바닥에 깔리는 커다란 판이 바로 팩이다.

셀의 모양은 크게 세 가지다. 건전지처럼 생긴 원통형은 만들기 쉽고 값이 싸서 테슬라가 즐겨 쓴다. 금속 상자 모양의 각형은 튼튼해서 삼성SDI와 중국 CATL이 주로 만든다. 얇은 비닐 봉지 같은 파우치형은 모양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어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이 많이 만든다. 회사마다 주력 모양이 다르다는 점이 고객(자동차 회사)과의 관계를 정한다.
최근에는 모듈 단계를 아예 빼고 셀을 팩에 바로 넣는 방식(셀 투 팩, CTP)도 늘었다. 중국 BYD의 '블레이드 배터리'가 대표적이다. 단계를 줄이면 같은 공간에 셀을 더 많이 넣을 수 있고 값도 싸진다.

1-4. 배터리 값은 어디에 들어가나
배터리 값은 대부분 재료값이다. 셀 원가에서 양극재가 40% 안팎으로 가장 크고, 음극재·분리막·전해질 같은 다른 소재까지 합치면 재료가 원가의 절반을 훌쩍 넘는다(대략치, 배터리 종류와 원자재 값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확인 필요].
그래서 배터리 값은 리튬, 니켈 같은 원자재 값에 따라 크게 출렁인다. 2022년 리튬 값이 몇 배로 뛰었을 때 배터리 값도 올랐고, 2023년 이후 리튬 값이 폭락하자 배터리 값도 크게 내렸다. 그래도 길게 보면 배터리 값은 꾸준히 떨어져 왔다. 1990년대 초에 비하면 kWh(킬로와트시)당 가격이 수십 분의 1이 됐다(대략치). kWh는 1,000와트짜리 기계를 1시간 돌릴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이다. 전기차 한 대에는 보통 60~80kWh가 들어간다.
배터리 값이 떨어진 이유는 반도체와 비슷하다. 많이 만들수록 공정이 좋아지고 불량이 줄어 싸진다. 그리고 그 '많이 만드는' 경쟁에서 가장 앞선 나라가 중국이다. 연결: 반도체.
1-5. 셀 회사와 소재 회사
이렇게 보면 배터리 산업은 두 층으로 나뉜다. 셀을 만들어 자동차 회사에 파는 셀 회사, 그리고 셀 회사에 양극재·음극재·분리막·전해질을 파는 소재 회사다.

한국의 셀 회사는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세 곳이다. 소재 회사는 더 많다. 양극재는 에코프로비엠, 포스코퓨처엠, LG화학, 엘앤에프, 음극재는 포스코퓨처엠, 분리막은 SK아이이테크놀로지, 전해질은 엔켐과 동화일렉트로라이트 등이 만든다. 음극 쪽 전기를 모으는 얇은 구리판(동박)은 SK넥실리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솔루스첨단소재 등이 만든다 [확인 필요: 최근 매각·사명 변경].
셀 회사가 자동차 회사에 '갑'이라면, 소재 회사는 셀 회사에 '을'일 때가 많다. 셀 회사가 소재 회사를 고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료를 확보하거나 특별한 기술을 가진 소재 회사는 반대로 셀 회사가 매달리는 위치가 되기도 한다. 이 힘의 줄다리기는 뒤에서 셀 회사와 원료를 볼 때 다시 본다.
1-6. 전기차만이 아니다 — ESS
배터리의 가장 큰 고객은 전기차지만, 빠르게 크는 두 번째 시장이 있다. ESS(Energy Storage System, 에너지 저장 장치)다. 커다란 배터리를 컨테이너에 가득 채워 전기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설비다.
ESS가 필요한 이유는 태양광과 풍력이다. 해는 낮에만 뜨고 바람은 불 때만 분다. 그래서 전기가 남을 때 배터리에 담아 뒀다가 해가 진 저녁에 꺼내 써야 한다. 최근에는 AI 데이터센터가 전기를 엄청나게 쓰면서, 전력망이 버티도록 돕는 ESS 수요도 커졌다. 전기차 판매가 주춤한 사이 배터리 회사들이 ESS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연결: 전력·에너지, AI.
1-7. 배터리는 왜 중요한 산업인가
정리하면 배터리는 자동차와 전력망을 동시에 바꾸는 부품이다. 전기차에서는 차 값의 큰 몫(대략 3분의 1 안팎)을 차지하는 가장 비싼 부품이고 [확인 필요], 전력망에서는 재생에너지를 쓸 수 있게 해 주는 열쇠다. 그래서 미국, 유럽, 중국, 한국 정부 모두 배터리를 반도체와 함께 '전략 산업'으로 꼽는다.
그리고 배터리를 이해하는 출발점은 결국 양극재다. 가장 비싸고, 어떤 금속을 쓰느냐에 따라 성능과 값과 원료를 쥔 나라까지 달라지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서는 양극재의 두 갈래, NCM과 LFP를 본다.
핵심 정리
리튬이온 배터리는 리튬이온을 양극과 음극 사이로 옮기며 전기를 화학 에너지로 저장했다가 꺼낸다. 양극재·음극재·분리막·전해질 4대 소재가 셀을 이루고, 셀이 모듈과 팩이 된다. 원가의 대부분은 재료값이라 원자재 값에 따라 배터리 값이 출렁인다. 한국 배터리 산업은 셀 회사 3곳과 많은 소재 회사로 이뤄져 있고, 전기차에 이어 ESS가 새 시장으로 크고 있다.
다음 편 예고 — 양극재가 가격을 정한다: NCM vs LFP
니켈을 많이 쓴 배터리와 철을 쓴 배터리는 무엇이 다른지, 왜 한국은 NCM, 중국은 LFP에 강했는지, 그리고 그 판이 지금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따라간다.
사진 출처
- 원통형 셀 두 가지: Sevenethics, CC0 (위키미디어)
- 닛산 리프의 배터리 팩: Mario Roberto Duran Ortiz, CC BY-SA 3.0 (위키미디어)
- 미국 오크리지 국립연구소에서 시험용으로 만든 작은 셀들: 미국 에너지부, 퍼블릭 도메인 (위키미디어)
숫자 출처
- 2019년 노벨 화학상(굿이너프·휘팅엄·요시노): https://www.nobelprize.org/prizes/chemistry/2019/summary/
- 리튬이온 배터리 첫 상용화(1991년, 소니): https://en.wikipedia.org/wiki/Lithium-ion_battery
- 셀 원가 중 양극재 비중, 차 값 중 배터리 비중, kWh당 가격 하락 폭: 대략치. 블룸버그NEF 배터리 가격 조사 등으로 확인 필요.